법인이 보유한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시장에 5대 금융그룹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법인의 가상자산 보유가 막혀 있지만, 미국 등 선진국처럼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허용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판단에서다. 개인 투자만 가능한 국내에서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50조원에 육박하는 것을 고려할 때 법인 투자가 허용되면 수십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도전장 낸 하나금융

가상자산 수탁시장 눈독 들이는 5대 금융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비트고 코리아의 지분 25%를 확보했다. SK텔레콤도 10% 지분을 취득했다. 비트고 코리아는 글로벌 가상자산 수탁기업인 비트고의 한국 법인이다. 2013년 설립된 비트고는 세계 50여 개국에서 700억달러(약 93조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비트고 코리아는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 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준비 중이다. 정재욱 하나금융지주 AI디지털전략본부 상무는 이달 초 열린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24에서 “비트고와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고, 신뢰성 있는 수탁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의 발전과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이 가상자산 수탁 시장에 뛰어들면서 5대 금융 모두 이 시장에 참전하게 됐다. 국민은행은 2020년 11월 블록체인 개발사 해치랩스, 투자사 해시드와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신한은행은 암호화폐거래소인 코빗 등과 함께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을 세웠다. 농협은행과 우리은행도 각각 카르도와 디커스터디 등 가상자산 수탁사에 출자했다.

○커지는 가상자산 수탁시장

블록체인상 존재하는 가상자산은 프라이빗 키(무작위 문자와 숫자 조합)로 소유권을 행사한다. 프라이빗 키를 잃어버리거나 노출하면 안 되는 이유다. 프라이빗 키는 USB와 같은 하드웨어나 종이에 인쇄해 보관할 수 있고, 암호화된 디지털 저장소에도 보관 가능하다. 가상자산 수탁은 이런 프라이빗 키를 보관·관리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일반 기업이 프라이빗 키를 관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 수요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5대 금융이 가상자산 수탁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43조6000억원이다. 국내에서는 개인 투자만 가능한데 법인 투자가 본격화하면 새로운 먹거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현재 2조1400억달러(약 2800조원)다.

올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에서 허용되면서 가상자산 수탁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의 가상자산 수탁 자회사인 코인베이스커스터디의 총수탁 자산은 1000억달러(약 133조원)가 넘는다. 이 회사 고객은 주로 기관투자가로, 주요국의 국부펀드도 고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은 “선진 금융시장에서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법인 투자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통적으로 수탁에 강한 금융사로선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