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K반도체와 모건스탠리의 악연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분석 대상 기업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여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지나치게 우호적인 보고서를 내고, 너무 멀면 분석에 필수 정보를 제때 받지 못해 엉뚱한 얘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적극 매수, 매수(비중 확대), 보유(중립), 매도(비중 축소), 적극 매도 등 5단계 투자의견 중 매수 정도의 투자의견을 내고 목표주가를 높이거나 낮추는 증권사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증권사 모건스탠리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런 통상의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악연에 가깝다. 모건스탠리가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갑자기 낮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엔 삼성전자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낮추고 목표주가도 떨어뜨렸다. 메모리산업 사이클이 곧 정점을 찍을 것이란 관측에서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017년과 2018년 연이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려 모건스탠리 전망이 잘못됐음을 입증했다.

2021년 8월엔 ‘메모리, 겨울이 오고 있다(Memory, winter is coming)’는 제목의 보고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UFJ가 20% 지분을 갖고 있어 한국 기업 견제 차원에서 부정적 보고서를 냈다는 얘기와 선명한 투자의견 제시 차원이라는 분석이 함께 나왔다.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악화하자 모건스탠리 관측이 맞았다는 평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모건스탠리가 지난 15일 발간한 ‘겨울이 어른거린다(Winter looms)’ 보고서에선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낮추고, SK하이닉스는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반토막 이하로 떨어뜨렸다. SK하이닉스는 투자의견도 비중 축소로 낮췄다. D램은 수요 감소,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공급 과잉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인공지능(AI) 투자가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과장된 비관론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어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모두 떨어졌지만, 장 후반 낙폭이 줄어들었다. 누구 말이 맞을지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