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 19일 오후 5시 10분
한투 앞세워 세력 결집나선 고려아연…PEF, IB '쩐의 전쟁' 돌입
한국투자증권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에 맞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돕는 ‘백기사’로 등장했다. 사모펀드(PEF)와 연합해 2조원 안팎의 자금을 모은 뒤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최 회장은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이 싸움에서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며 반격을 예고했다.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담당자는 최근 복수의 국내외 PEF 관계자와 만나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했다. 한투증권은 대항 공개매수에 투입할 2조원 안팎의 자금 중 가장 많은 액수를 자체 자금으로 대고, 나머지는 PEF에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한투증권이 백기사로 가세하면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7% 지분’ 공방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 지분율은 33.13~34.71%다. 최 회장 측은 현대자동차, LG화학, 한화 등의 우호 지분을 합치면 총 34.17%로 추산된다. MBK파트너스는 국민연금(7.8%)과 자기주식(2.4%)을 제외한 유통주식 20.5% 중 7%만 사들여도 의결권 지분 44%를 확보해 승기를 굳힐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한투증권이 등장하면서 승패를 가늠할 수 없게 됐다. 한투증권의 자금 조달 능력이 MBK에 필적하기 때문이다. 앞서 HMM 인수전에서도 동원과 손잡고 외부 차입 없이 3조원을 조달했다. 한투증권은 고려아연 지분 0.77%를 보유해 최 회장 측의 우군으로 분류돼 왔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이 최 회장 측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최 회장 측은 대항 공개매수에 들어가기 위해 영풍 및 장씨 일가와 특별관계인 관계를 해소했다. 특별관계인으로 묶여 있으면 자본시장법상 공개매수에 대항해 장내 지분 매집과 대항 공개매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6.16% 급등했다. 공개매수 가격인 66만원을 훌쩍 넘긴 70만7000원에 마감했다.

침묵 깬 최윤범 "이길방법 찾았다"…글로벌 IB 출신 영입해 '큰손' 접촉
백기사 한투, PEF 만나 컨소 제안…대항 공개매수 땐 자금력 싸움

“지난 며칠간 밤낮으로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짜낸 저는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것으로 확신합니다. 연휴에도 외국 회사들과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기습 공개매수에도 침묵을 지키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9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경영권 방어를 확신했다. 최 회장이 승기를 자신한 데는 자기자본 8조원의 한국투자증권을 우군으로 확보한 것이 배경이 됐다. 고려아연 분쟁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와 초대형 증권사 간 ‘쩐의 전쟁’으로 확전하고 있다.

○한투, 컨소시엄 구성 위해 PEF 접촉

한국투자증권 실무진은 추석 연휴 첫날부터 복수의 PEF 관계자를 만나 자신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항 공개매수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투입 자금으론 총 2조원을 예상했다. 한국투자증권이 가장 큰 금액을 투자하면서 리스크 분산을 위해 PEF를 끌어들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추후 최 회장 측과 협상을 통해 안정적인 투자 회수방안을 확정 짓겠다는 제안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돼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 최 회장 주도로 진행한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1045억원을 투입해 지분 0.77%를 확보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등을 전담하는 수탁사 업무도 맡고 있다.

○대항 공개매수 움직임에 시장 촉각

대항 공개매수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MBK가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붙여 적극적으로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는 방식이다. 대신 최 회장 측은 투자자들에게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고 개인 자산 등을 담보로 최우선으로 투자금을 갚겠다는 주주 간 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을 벌기 위한 작은 규모의 공개매수 가능성도 점쳐진다. 공개매수 가격은 높이되 매입 지분은 낮추는 식이다.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한편으로는 한국투자증권 측이 장내에서 지분 매집에 나설 수 있지만 시세조종 혐의가 적용될 수 있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려아연은 분쟁 직전 글로벌 투자은행(IB) 출신 이승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해 글로벌 협력사 및 범아시아권 기업들과 접촉에 나섰다. 현재 가장 밀접한 곳은 글로벌 PEF인 베인캐피탈이다. 이 CFO는 베인캐피탈의 대표적 거래인 카버코리아와 관련해 자문을 제공하는 등 베인캐피탈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로 꼽힌다. 이 CFO는 연휴 기간이던 17일 최 회장의 아시아 각국 출장에도 동행해 해외 투자자 미팅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외국 회사’를 언급한 만큼 고려아연 지분 1.49%를 보유한 트라피구라 등 기존 우군이 지분을 늘려 최 회장을 도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려아연은 백기사 확보와 별개로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통해 자사주 매입의 적법성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MBK 측은 이 같은 움직임을 주가를 올리려는 행위로 간주해 자사주매입 금지 가처분신청으로 이를 막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담보여력 등 변수도 적지 않아

변수도 만만치 않다. 한국투자증권은 컨소시엄 구성을 백기사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PEF들은 투자를 검토할 시한이 촉박한 점을 호소하고 있다. 향후 회수방안이 불투명한 점도 문제다. 최 회장과 일가가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 15.65%를 담보로 인수 구조를 고안해야 하는데 대부분 지분이 이미 담보대출 등으로 잡혀 있어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많지 않다. 시장에선 고려아연 최씨 일가의 담보 가능한 지분 가치가 3000억~4000억원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차준호/박종관/오현우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