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별세한 코리아게이트 주역 박동선 씨. 연합뉴스
19일 별세한 코리아게이트 주역 박동선 씨. 연합뉴스
1970년대 중반 한미관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주인공 박동선 씨가 지난 1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오후 6시 45분께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박씨가 지병을 앓던 중 일주일 전쯤 상태가 악화돼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코리아게이트는 1976년 10월 24일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가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90여 명의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매수공작을 벌였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시작됐다. 평안남도 순천 태생인 박씨는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대 워싱턴DC에 사교모임 '조지타운클럽'을 만들어 현지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인물이었다.

이에 더해 같은 해 11월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던 중앙정보부 소속 김상근 참사관이 미국으로 망명, 박정희 정권이 미 정치인 등을 포섭해 미국 내 긍정적 여론을 유도하려 했다는 이른바 '백설작전'을 폭로했다. 이어 1977년 6월 뉴욕타임스(NYT)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박씨에게 미국 내 로비활동을 지시한 정황이 미 정보기관의 청와대 도청으로 포착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코리아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선언하고 도널드 프레이저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미 하원 '프레이저 소위원회'까지 조사에 나서는 한편 특별검사팀까지 구성돼 대대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박씨는 결국 미 체류 기간 신분보장 등을 약속받고 1978년 미 의회 공개 청문회 등에 출석해 증언했다.

박씨는 미 의원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사건은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현직 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의 징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박씨는 자신의 행동이 "한국인으로서의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친선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며 "한국 정부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박씨는 2006년 유엔의 대(對)이라크 석유-식량계획과 관련해 이라크로부터 25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기도 했다. 박씨는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9월 조기 석방돼 귀국, 이후 한국에 주로 머무른 것으로 전해졌다. 송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