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가서 코코아 살게…품질 차이에 외면받는 英 코코아 [원자재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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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 거래소 간 코코아 선물 가격에 큰 격차가 벌어졌다. 전 세계 코코아 공급 부족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초콜릿 공급업체들이 고품질의 코코아를 얻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자, 품질이 비교적 좋지 않은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의 코코아가 외면당하면서다.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지난 13일 거래된 근월물인 10월 인도분 코코아 선물은 지난주에 톤당 1만달러를 돌파한 10079달러에 거래됐다.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 근월물 가격은 하락해 이번 달 초에 64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최근 며칠간 지속된 매도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가격은 지난달 초 이후 3% 하락했지만, 런던 가격은 16%가량 가파르게 내렸다.
미국과 영국 거래소 코코아 선물 가격 상승 그래프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파란색은 미국, 빨간색은 영국)
(자료=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과 영국 거래소 코코아 선물 가격 상승 그래프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파란색은 미국, 빨간색은 영국) (자료=파이낸셜타임스=FT)
카카오 가격은 올해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급등했다. 올해 초 전 세계 코코아의 3분의 2를 생산하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 악천후와 질병이 발생해 코코아 작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도 선물 시장에 몰려들며 코코아 가격은 급등했다. 공급이 줄자 초콜릿 가공 업체들은 고품질 코코아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미국 재고는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영국 재고는 202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영국에서 거래되는 코코아가 오래되거나 품질이 좋지 않아 미국에 비해 수요가 늘지 않고가격 격차가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8월 말 기준 런던 ICE 선물거래소 창고에 보관된 5만4650톤 코코아 중 4분의 1 이상이 3년 이상 된 코코아로 알려졌다. 이 재고의 거의 80%는 카메룬에서 재배한 코코아로, 업계에서는 비교적 저품질 코코아 원료로 널리 알려졌다.

글로벌 농축산기업인 카길에서 2022년까지 코코아 및 초콜릿 거래 부문 글로벌 책임자를 맡았던 마르틴 브론은 런던의 코코아 재고를 두고 "독약이 든 알약"이라고 FT에 말했다. 오란 반 도르트 라보뱅크 상품 분석가는 "이러한 (코코아) 재고의 상당수가 오래됐고, 비선호 원산지에서 생산된다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런던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가격이 내렸다"고 설명했다.

품질 저하에도 불구하고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유럽연합(EU) 삼림벌채규정은 런던거래소에서 코코아 가격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초콜릿 가공업체들이 삼림벌채규정 시행에 앞서 코코아 구매를 서두르면서다. EU 삼림벌채규정은 EU가 정한 환경 실사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코코아, 커피, 팜유, 고무, 대두, 목재 등 제품이 유럽 역내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도록 명시한 규제다. 이 규제는 초콜릿 가공업체가 EU로 수입하는 코코아가 벌채된 토지에서 재배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의무화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당분간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카메룬산 코코아 선물에 대한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U 삼림벌채규정이 오래된 원자재 거래에 대해서는 딱히 규제하지 않는 데다 소규모 초콜릿 가공 업체들이 원자재 값을 아끼기 위해 카메룬산 코코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파멜라 손튼 코코아 거래자는 "카메룬산 코코아 대량 거래는 계속될 것"이라며 "소규모 또는 민간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카메룬산을)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