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써니'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팔복예술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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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영식의 찾아가는 예술 공간
그 때 그 시절, '써니' 복고 감성 가득
레트로를 담은 전주 <팔복예술공장>
그 때 그 시절, '써니' 복고 감성 가득
레트로를 담은 전주 <팔복예술공장>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써니(Sunny)'를 기억하는지? 복고 감성에 발랄한 10대 소녀들의 매력까지, 그 시절의 추억을 가득 담았던 영화다. 그런데 그때의 감성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전주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이다.
팔복예술공장은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흔히 '팔복공단'이라 불리는 1969년 조성된 제1산업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1979년, 이곳에 ‘썬전자’라는 카세트테이프 제조 공장이 문을 열었다. 영화 '써니'에서 카세트테이프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겨 춤을 춘 것처럼, 당시 카세트테이프는 낭만 가득한 청춘들의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CD(Compact Disc)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고, 노조와 갈등까지 겹치면서 결국 1991년에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 후 25년 동안 방치되었던 이곳이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기존 공장 건물을 부수지 않고 위험한 부분만 보강해, 예술 작품을 설치한 ‘팔복예술공장’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을 지우지 않고, 현재의 예술과 조화시켰다는 점이다. 접혀 있고 찢긴 시간을 다시 펼쳐낸 것처럼, 이곳을 거닐다 보면 1970년대와 2024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균형을 이룬다. 도심 속 산업단지의 거친 일상 속에 미술관이라는 비일상을 품은 이곳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팔복예술공장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공장건물 A동은 이전 카세트테이프를 조립하던 곳이었고, B동은 부품을 만들던 공간이었다. 현재 A동은 전시장과 입주 작가들의 창작 스튜디오로, B동은 어린이들의 도서관과 놀이터로 사용된다. 시간과 용도는 달라졌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과거 A동에 완성품인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면, 지금은 완성된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B동 역시 과거에는 완성품을 준비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미래의 완성품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우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50년의 시간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A동 로비에는 공장이 문을 닫을 당시 남겨진 카세트테이프, 낡은 출근부, 생산일지, 파업 소식지 ‘햇살’ 등이 전시되어 그 시절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온습도계’로, 카세트테이프가 온도와 습도에 민감했기 때문에 사용되던 장비다. 이 온습도계는 당시 공장의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또한 벽 곳곳에 남은 근로자들의 낙서를 통해 50년 전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과거의 흔적을 남겨둠으로써 현재의 공간이 더욱 풍부해진다. 로비 옆에는 카페 ‘써니’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카페의 이름은 과거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것이다. 카페 ‘써니’는 공장의 자재를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낡은 함석판이 벽이 되었고, 카페의 전등은 근로자들이 사용하던 의자를 재현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마주하니, 문득 그분들이 한때 '써니'로 불리며 분주하게 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카페의 일상 속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써니’의 열정과 추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카페 안에는 1기 입주 작가들이 만든 조형물 ‘써니’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청바지에 초록색 두건, 나팔바지와 체크무늬 셔츠까지, 당시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하지만 ‘써니’는 단순한 레트로 감성에 머물지 않는다. 김정임 해설사는 ‘써니’의 손을 주목해 보라고 말한다. 천장에 닿을 만큼 큰 키를 가졌지만, 그 손은 유난히 작다. ‘써니’의 손은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공’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당시 여공들은 주로 전주 근교의 가난한 집 딸들이었고, 한 달 내내 일을 해서 받은 월급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골에 있는 가족을 위해 쓰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손은 닳아갔고,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던 그들의 손은 점점 작아졌다. ‘써니’는 50년 전 어린 소녀들의 고단한 삶을 지금의 화려한 카페에서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그 나이 또래의 젊은 여성들이 ‘써니’를 배경으로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지만, 그 옛날의 ‘써니’는 삶의 무게를 견뎌낸 어린 여공들의 이야기다. 팔복예술공장의 대표 작품 ‘써니’는 이렇게 비움과 채움,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 시대의 아픔과 오늘의 희망을 함께 담아낸다.
팔복예술공장의 2층 전시장은 과거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전시장은 400명의 여공들이 주간과 야간에 200명씩 교대로 근무하던 곳이다. 한쪽에는 문이 없는 화장실도 전시되어 있는데, 실제 사용되었던 그 화장실의 변기마다 카세트테이프와 늘어진 테이프들이 가득 쌓여 있다. 유진숙 작가의 작품 ‘하루’로, 400명에게 네 칸뿐이던 화장실이 당시 근로자들의 고된 현실을 묵묵히 보여준다. 화장실 옆 벽면에는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노랫말이 적혀 있어, 그 시절 노동자들에게 뒤늦게 전하는 작은 위로처럼 다가온다. 전시장은 과거의 흔적을 숨기지 않기에 그 시절의 일상이 더욱 진솔하게 느껴진다.
A동과 B동은 붉은색 컨테이너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의 창문을 통해 주변 공장 지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는 구름 모양의 설치 작품이 걸려 있는데, 이는 다리 위가 아닌 지상에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되다. 팔복예술공장 주변에서는 여전히 많은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이 언제든지 밖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 설치물은 의도적으로 외부에서 잘 보이게 만든 것이다. 미술관이 산업공단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B동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인 ‘꿈꾸는 예술터’와 공장에서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자리한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이 있다. 예술터에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이 가득하며, 자유롭게 흩어진 낙서도 곳곳에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A동 로비 벽에 남겨진 50년 전 근로자의 낙서와 B동 아이들의 낙서가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공간은 인천아트플랫폼의 총괄 기획자였던 건축가 황순우의 지휘 아래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이 ‘완성된 장소’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다. 단순히 건물을 새로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며 스스로 변모하는 공간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취지에 맞는 전시, ‘완벽한 순환’이 9월 26일부터 시작된다. 2년간 준비된 ‘완벽한 순환’은 ‘기후 위기와 예술’을 주제로, 현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예술을 통해 함께 고민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가지 ‘현실적 제한’을 ‘예술적 자율성’으로 표현하는 점이 주목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제한'과 개인의 '자유'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후변화 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시도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인 ‘양쿠라’는 전주천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버드나무를 벌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주천의 물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 작업을 구상했다. 전주천 발원지에서부터 만경강 끝까지 카약을 타고 이동하며, 인간 중심의 시선이 아닌 물의 낮은 시선을 경험한다. ‘김순임’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전주천 신풍교 밑에서 머물며 달과 달무리, 또는 동심원의 형상을 상상하며 돌을 쌓아 올렸다. 전주천에 흩어진 돌들을 옮겨 달의 모습을 띄우는 작업이다. ‘김현준’은 제주 해안가로 떠밀려온, 혹은 버려진 것들에 LED를 심는 작업을 한다. LED 소자는 빛을 전달하는 매체로 활용되며 지속해서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는 생산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환경에 관심을 가진 예술가들의 모임인 '무해한 예술실험' 프로젝트 작품들과 신재은, 강유진 작가를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는 환경 문제를 넘어 팔복예술공장이 지닌 과거와 현재의 '완벽한 순환'을 되새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 과정도 아카이브 형태로 함께 전시되어, 예술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롭게 순환하는지 직접 느낄 수 있다. 이 특별한 전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를 만나 보길 권한다. 공장 앞을 지나는 철길에는 하루에 두세 번씩 화물기차가 오간다. 오늘은 그 기차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실내가 답답할 땐 두 컨테이너 사이에서 철길을 바라보는 것도 참 좋겠다. 그곳에서 잠시 바람을 맞다 보면, 카세트테이프 세대라면 잊고 있던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Sunny, one so true, I love you~" 최영식 칼럼니스트
팔복예술공장은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흔히 '팔복공단'이라 불리는 1969년 조성된 제1산업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1979년, 이곳에 ‘썬전자’라는 카세트테이프 제조 공장이 문을 열었다. 영화 '써니'에서 카세트테이프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겨 춤을 춘 것처럼, 당시 카세트테이프는 낭만 가득한 청춘들의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CD(Compact Disc)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고, 노조와 갈등까지 겹치면서 결국 1991년에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 후 25년 동안 방치되었던 이곳이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기존 공장 건물을 부수지 않고 위험한 부분만 보강해, 예술 작품을 설치한 ‘팔복예술공장’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을 지우지 않고, 현재의 예술과 조화시켰다는 점이다. 접혀 있고 찢긴 시간을 다시 펼쳐낸 것처럼, 이곳을 거닐다 보면 1970년대와 2024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균형을 이룬다. 도심 속 산업단지의 거친 일상 속에 미술관이라는 비일상을 품은 이곳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팔복예술공장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공장건물 A동은 이전 카세트테이프를 조립하던 곳이었고, B동은 부품을 만들던 공간이었다. 현재 A동은 전시장과 입주 작가들의 창작 스튜디오로, B동은 어린이들의 도서관과 놀이터로 사용된다. 시간과 용도는 달라졌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과거 A동에 완성품인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면, 지금은 완성된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B동 역시 과거에는 완성품을 준비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미래의 완성품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우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50년의 시간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A동 로비에는 공장이 문을 닫을 당시 남겨진 카세트테이프, 낡은 출근부, 생산일지, 파업 소식지 ‘햇살’ 등이 전시되어 그 시절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온습도계’로, 카세트테이프가 온도와 습도에 민감했기 때문에 사용되던 장비다. 이 온습도계는 당시 공장의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또한 벽 곳곳에 남은 근로자들의 낙서를 통해 50년 전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과거의 흔적을 남겨둠으로써 현재의 공간이 더욱 풍부해진다. 로비 옆에는 카페 ‘써니’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카페의 이름은 과거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것이다. 카페 ‘써니’는 공장의 자재를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낡은 함석판이 벽이 되었고, 카페의 전등은 근로자들이 사용하던 의자를 재현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마주하니, 문득 그분들이 한때 '써니'로 불리며 분주하게 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카페의 일상 속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써니’의 열정과 추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카페 안에는 1기 입주 작가들이 만든 조형물 ‘써니’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청바지에 초록색 두건, 나팔바지와 체크무늬 셔츠까지, 당시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하지만 ‘써니’는 단순한 레트로 감성에 머물지 않는다. 김정임 해설사는 ‘써니’의 손을 주목해 보라고 말한다. 천장에 닿을 만큼 큰 키를 가졌지만, 그 손은 유난히 작다. ‘써니’의 손은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공’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당시 여공들은 주로 전주 근교의 가난한 집 딸들이었고, 한 달 내내 일을 해서 받은 월급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골에 있는 가족을 위해 쓰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손은 닳아갔고,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던 그들의 손은 점점 작아졌다. ‘써니’는 50년 전 어린 소녀들의 고단한 삶을 지금의 화려한 카페에서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그 나이 또래의 젊은 여성들이 ‘써니’를 배경으로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지만, 그 옛날의 ‘써니’는 삶의 무게를 견뎌낸 어린 여공들의 이야기다. 팔복예술공장의 대표 작품 ‘써니’는 이렇게 비움과 채움,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 시대의 아픔과 오늘의 희망을 함께 담아낸다.
팔복예술공장의 2층 전시장은 과거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전시장은 400명의 여공들이 주간과 야간에 200명씩 교대로 근무하던 곳이다. 한쪽에는 문이 없는 화장실도 전시되어 있는데, 실제 사용되었던 그 화장실의 변기마다 카세트테이프와 늘어진 테이프들이 가득 쌓여 있다. 유진숙 작가의 작품 ‘하루’로, 400명에게 네 칸뿐이던 화장실이 당시 근로자들의 고된 현실을 묵묵히 보여준다. 화장실 옆 벽면에는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노랫말이 적혀 있어, 그 시절 노동자들에게 뒤늦게 전하는 작은 위로처럼 다가온다. 전시장은 과거의 흔적을 숨기지 않기에 그 시절의 일상이 더욱 진솔하게 느껴진다.
A동과 B동은 붉은색 컨테이너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의 창문을 통해 주변 공장 지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는 구름 모양의 설치 작품이 걸려 있는데, 이는 다리 위가 아닌 지상에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되다. 팔복예술공장 주변에서는 여전히 많은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이 언제든지 밖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 설치물은 의도적으로 외부에서 잘 보이게 만든 것이다. 미술관이 산업공단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B동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인 ‘꿈꾸는 예술터’와 공장에서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자리한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이 있다. 예술터에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이 가득하며, 자유롭게 흩어진 낙서도 곳곳에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A동 로비 벽에 남겨진 50년 전 근로자의 낙서와 B동 아이들의 낙서가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공간은 인천아트플랫폼의 총괄 기획자였던 건축가 황순우의 지휘 아래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이 ‘완성된 장소’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다. 단순히 건물을 새로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며 스스로 변모하는 공간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취지에 맞는 전시, ‘완벽한 순환’이 9월 26일부터 시작된다. 2년간 준비된 ‘완벽한 순환’은 ‘기후 위기와 예술’을 주제로, 현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예술을 통해 함께 고민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가지 ‘현실적 제한’을 ‘예술적 자율성’으로 표현하는 점이 주목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제한'과 개인의 '자유'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후변화 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시도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인 ‘양쿠라’는 전주천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버드나무를 벌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주천의 물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 작업을 구상했다. 전주천 발원지에서부터 만경강 끝까지 카약을 타고 이동하며, 인간 중심의 시선이 아닌 물의 낮은 시선을 경험한다. ‘김순임’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전주천 신풍교 밑에서 머물며 달과 달무리, 또는 동심원의 형상을 상상하며 돌을 쌓아 올렸다. 전주천에 흩어진 돌들을 옮겨 달의 모습을 띄우는 작업이다. ‘김현준’은 제주 해안가로 떠밀려온, 혹은 버려진 것들에 LED를 심는 작업을 한다. LED 소자는 빛을 전달하는 매체로 활용되며 지속해서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는 생산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환경에 관심을 가진 예술가들의 모임인 '무해한 예술실험' 프로젝트 작품들과 신재은, 강유진 작가를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는 환경 문제를 넘어 팔복예술공장이 지닌 과거와 현재의 '완벽한 순환'을 되새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 과정도 아카이브 형태로 함께 전시되어, 예술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롭게 순환하는지 직접 느낄 수 있다. 이 특별한 전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를 만나 보길 권한다. 공장 앞을 지나는 철길에는 하루에 두세 번씩 화물기차가 오간다. 오늘은 그 기차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실내가 답답할 땐 두 컨테이너 사이에서 철길을 바라보는 것도 참 좋겠다. 그곳에서 잠시 바람을 맞다 보면, 카세트테이프 세대라면 잊고 있던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Sunny, one so true, I love you~" 최영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