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칼럼을 준비하며 찾아본 표현 중에 ‘문화적 공범’이란 것이 있습니다 [관련 칼럼 보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게 되는 문화예술에 대한 콘센서스’ 정도면 짧고 좋은 방향으로의 요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격동적인 역사를 다룬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은 어찌 보면 독자와 관객이 이미 공유하고 있는 지점을 소설가 혹은 영화감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가서는 것이고, 그것이 설득력 있는 것이라면 독자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적 역사에 대한 통찰을 유머에 녹여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그러했겠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도 그런 면에서는 아주 훌륭한 영화 같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만 국한된 역사, 그 역사 속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한 명의 개인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김영호(설경구 扮)라는 주제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이 마치 완벽한 실타래처럼 엮여서, 보는 이들이 모두 그것을 알고 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되돌아봅니다.

그 관점을 고스란히 ‘개인’이라는 주제로 집약한 지점, 그곳에서 영화 <리볼버>가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N=1차 : 시작 그리고 제목에 대하여

‘문’이라는 소재는 영화를 시작하기에 좋은 소재입니다. 이것과 저것의 단절을 나타내기도 편리하고 또는 저것과 이것의 경계를 나타내기에도 무리가 없고, 혹은 둘 사이의 적절한 모호함을 나타내기에도 편안한 소재입니다. ‘감독과 제작자가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역시 영화 도입부에 ‘문’을 보여주며 시작하지요. 영화 <리볼버>는 하수영(전도연 扮)이 형기를 마치고 나서는 감옥의 문을 보여줍니다. 국가를 대신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한 감옥의 한 관리자에게 하수영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형사로서 국가의 녹을 먹고 일하던 시절은 끝났으며 이제 국가의 어떤 개입 역시도 받지 않겠다는, 소소하지만 강한 결심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이제 펼쳐질 하수영 개인만의 역사를 관객에게 평가받겠다는 시작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지난 일들은 모두 그 문 뒤 감옥에 가두어 놓고.
영화 <리볼버>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리볼버>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류승완 감독과 진행한 GV(Guest Visit)에서 ‘Revolver’와 ‘Revenge’라는 표현을 잠시 착각했다고 오승욱 감독은 언급했지만, 영화는 ‘복수’라는 표현이 환기하는 자극적인 요소들은 모두 억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란한 총소리도, 유혈이 낭자한 칼부림도 없는 이 영화는 조용합니다. 영상에도, 대사에도, 배우들의 수에도, 인적·물적으로 가득 비어있는 그 공간과 그 여백을 조용히 바라보는 관객에게 영화는 소곤소곤 말을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소품 ‘리볼버’는 하수영이 걸어가는 길에 필요한 일종의 마지노선 같은 장치. 딱 그만큼인 것 같습니다.

N=2차 : 음•주•가•무와 희•노•애•락

통념상 하수영에게는 두 번의 기쁨이 있습니다. 보통 하얀 두부를 먹곤 하는 만기출소 한 번과 최대 20억 남짓한 자산이 생기게 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만기출소 후 호텔 객실에서 하수영은 위스키 한 잔을 만듭니다. 이 위스키 한 잔은 희•노•애•락 중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희(喜)와 락(樂)의 감성만을 담은 술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하나의 작은 제의 같습니다. 사랑했던, 그리고 세상을 떠난 전 연인 임석용(이정재 扮)에 대한 모든 미련을 위스키 한 잔에 태워버리는. 그에게서 배웠을 듯한 맛깔난 위스키 한 잔의 제조법. 스트레이트 한 잔의 위스키에 풍미를 가득 더할 따뜻한 온도의 물 한 모금. 하수영이 춤을 춘다면 어떤 춤을 출까 떠올려 보았지만, 이미 조영욱 음악감독이 해결해 놓았습니다.

잊지 못할 마지막 장면이라고 꼽고 싶은 이 영화의 라스트씬은 파도와 함께 시작합니다. 하수영 개인이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찾은 바닷가의 간이 소주집. 고무 다라에 가득 담긴 술 중에서 소주집 주인은 소주를 꺼냅니다. 그리고 생선 두 마리를 꺼냅니다. 꽁치입니다. 접는 석쇠 사이로 꽁치 두 마리를 넣고 굽습니다. 이 생선이 민어이거나 혹은 뱅에돔이면 어울렸을까 농담처럼 잠깐 생각해 봅니다. 소주와 꽁치 두 마리 거기에 접는 석쇠는 희•노•애•락 네 자의 감성 모두를 포함하기에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큰 액수의 현금과 자산까지 확보된 이 기쁨에 역시 춤이 곁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시 조영욱 음악감독은 같은 음악이지만 진입 시점을 달리해 전도연 배우가 이미 춤을 추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알려줍니다.

그저 첼로의 피치카토 같은 네 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에서 카르멘의 아리아인 ‘하바네라’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는. 박종호 지음의 도서 <불멸의 오페라> 제2권에서 하바네라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을 잠시 인용해 봅니다.

..... 이윽고 눈에 띄는 여공 카르멘이 나타난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며 분위기가 일순 변한다. 카르멘은 유명한 ‘하바네라’인 <사랑은 들새와 같아요>를 유혹적으로 부른다.

"사랑이란 들판의 새와 같아서 길들일 수가 없지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하면 새는 날아가버리는 법. 그러나 사랑이 멀리 있을 땐 기다려보세요. 언제 날아올지 모르지요“. 이 하바네라는 쿠바의 민요풍 노래로, 카르멘의 연애관과 인생관을 보여주는 명곡이다. 이 단 하나의 노래가 카르멘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더불어 카르멘이라는 인물을 분석하는 소개란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원하는 것만을 쫓을 뿐, 오직 자신의 자유 의지를 위해서는 어느 것도 양보하지 않는다‘라는 구절 역시 있는데, <리볼버>의 하수영이 지닌 캐릭터 역시 카르멘과 그리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길들일 수 없는 하수영씨가 ’하바네라‘에 맞춰 어떤 춤을 출까는, 관객이 가질 수 있는 기쁜 상상 중 하나이겠습니다.

[첼로로 시작하며 첼로와 함께하는 하바네라!]


인터미션 : 감옥에서의 면회를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는 전도연 배우 그리고......

2005년 영화 <너는 내 운명>에 담긴 감옥에서의 면회 장면은 인상 깊습니다. 감옥으로 면회를 오는 사랑하는 이를 맞기 위해 감방에 앉아 경대를 마주하고 얼굴을 곱게 화장하던 전도연 배우의 연기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느끼자면 달팽이처럼, 빠른 화면으로 느끼자면 도마뱀처럼, 강화유리 같은 혹은 두꺼운 아크릴판 같은 그 장벽을 서로 기어오르며 오열하던 두 배우의 모습 역시 머릿속에 콕 박혀 있습니다.

2007년 영화 <밀양>에서 자신은 용서하지 않은 살인범을, 하나님은 용서했다고 이야기하는 그 뻔뻔함에 분노를 삼키며 면회를 끝내고 나와 주차장에서 실신해버렸던 종교인. 대한민국이 혹은 라틴 아메리카가 자신의 역사를 묵직하게 새겨오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개인 역시 자신만의 역사를 하루하루 새겨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기억들을 꺼내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렵니다. 화자와 청자 그리고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이제는 세심하게 처리된 음향을 동반하는 전도연 배우의 면회 장면 하나는 그 배우가 연기했던 인상 깊은 장면들을 디폴트 값처럼 불러옵니다. 영화의 영상이 갖는 느릿한 어조는 그런 연상을 더욱 다양하게 부추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카잔이라는 의상으로 영화 <내부자들>에서 왼손 하나로 라면을 먹던 안상구(이병헌 扮)를 떠올리는 일, ”예리하시네“란 대사 한마디에 영화 <무뢰한>의 정재곤/이영준(김남길 扮)을 떠올리는 일, 어떤 관객은 이스턴 프라미스 사무실에 걸려 있던 그림을 보며 호리병을 들고 기와에 올라앉은 최민식 배우가 열연한 영화 <취화선>에 가닿았을 수도 있구요. 이 일련의 연상들은, 위 모든 배우들과 동시대의 문화적 향기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동시대 관객들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 같기도 합니다.

N=3차 : 어떤 동네 – 한혜수 화가의 작가 노트
한혜수 <어떤 동네>(2019), 린넨에 석채, 80.3 x 116.7cm / 출처. SPACE UM 홈페이지
한혜수 <어떤 동네>(2019), 린넨에 석채, 80.3 x 116.7cm / 출처. SPACE UM 홈페이지
내장을 딱딱한 껍질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 튼튼해 보여서 누군가에게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동물인 달팽이. 달팽이를 보여준 후 이윽고 등장하는 그레이스(전혜진 扮)가 서 있는 널찍한 그 공간에는 그림들이 몇 점 걸려 있습니다. (’다산의 상징‘이 옳다면 엄마와 아들 사이를 상징하는 복선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걸린 그림 중 한혜수 화가의 작품 <어떤 동네>의 작가 노트 중 한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우리에게 세상은 어려운 질문을 맞닥뜨리고 스스로 대답해야만 하는 미지의 여행지다. 삶의 길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1인은 우리 자신이다.“

홍대선,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푸른숲(2018)

미술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들을 소개하는 틈새에 영화에 사용된 미술작품의 이름과 작가들을 소개하는 구석 역시 만들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턴 프라미스의 사무실에서 우종택 화가의 작품 <Memory of origin>을 등지고 앉아 있는 하수영의 모습 역시 영화 속에서 참 멋있던 장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N=4차 : 라스트씬 그리고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국악기인 박은 보통 음악의 시작에 한 번, 끝을 낼 때는 세 번 친다고 하는데, 영화의 배경인 ’화종사‘라는 절의 스님은 최후의 결투가 끝난 시점에 크게 손뼉을 한 번만 칩니다. 서양인들이 졸업식을 개시라는 의미를 지닌 Commencement Ceremony라고 부르기도 하니 그것과 같은 맥락인가 영화를 보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절에서 이루어지는 말싸움 같은 최종 결투의 장면에는 계속 새소리가 배경에 흐릅니다. 평범한 새소리 같기도 하고, 가끔은 까마귀의 울음인 것 같기도 하고, 또 가끔은 갈매기의 소리인 것 같기도 하지요. 영화의 화면은 새소리를 타고 파도로 넘어갑니다. 들리는 파도 소리와 보이는 바다, 그리고 이제는 신분이 조금 더 확실해진 것 같은 새들은 모두 ’소식‘에 관련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하수영이 이룬 영화 안에서의 소식을 싣고 영화 밖 누군가에게 전방위적으로 나를 장치. 이들이 날라야 할 소식의 메시지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찾아보자면, 도서의 제목인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조금 더 구닥다리 스타일로 표현해 보자면, ’개인의 해방‘.

마지막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자연스럽게 전도연 배우와 오승욱 감독이 함께하는, ’그의 십 년‘이란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Her Decades’ 정도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음 10년 동안 기꺼이, 표현상으로는 ‘가치중립적’인, 전도연 배우가 내려주는 디폴트 값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부지런히 배치해 가며, 오혈포!든 육혈포!든 십혈포!든 기다리고 있겠노라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조영욱 음악감독 © 이정우
조영욱 음악감독 © 이정우
P.S. : 인터넷 상에서 박찬욱 영화감독이 조영욱 음악감독을 소개하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 옮겨봅니다.

”영화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질은, 대사나 숨소리, 효과음, 때로는 침묵까지를 음악의 요소로 파악하는 태도와 그 요소들을 잘 운용하는 능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의 리듬을 잘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음악 자체보다 그것이 들고 나는 위치를 정확히 지목하는 작업, 흔히 스포팅(spotting)이라고 하는 그 일을 해내는 데 있어 조영욱보다 뛰어난 음악감독은 한국에 없습니다. 음악을 넣는 일보다 빼는 일을 잘하는 것, 볼륨을 올리기보다 내리는 일을 중시하는 것, 조영욱은 그런 데 강한 음악감독입니다.“

영화와 어울리는 음악은 어떤 음악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블록버스터의 느낌은 아니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같지는 않고, 제목에 관한 여러 글과 영상을 보다가 숫자 5 또는 6을 언급하는 일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2023년 작년은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의 탄생 100주년의 해여서 종종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현악4중주 제1번 <야상적 변용>이라는 작품이 이 영화와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룻밤 사이 물질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승리 역시 거두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야성적(夜性的)이라고도 느껴지는 이 작품의 뉘앙스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17년 롯데콘서트홀을 방문해서 직접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던 벨체아 콰르텟의 연주로 소개합니다.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 현악4중주 제1번 ‘야상적 변용(Métamorphoses Nocturnes)’]


▶▶▶ [관련 인터뷰] 박찬욱의 음악 동반자 조영욱 "주류와는 다른 영화음악 만들고파" [아르떼 프리미엄]
▶▶▶ [관련 리뷰] 누아르의 정점에 험프리 보가트가 있다면, 한국 누아르에는 전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