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飮酒(음주) 5, 陶淵明(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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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원시]
飮酒(음주) 5
陶淵明(도연명)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주석]
* 飮酒(음주) :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20수로 구성된 연작시의 제목이다. 시의 제목이 ‘음주’이기는 하나 직접적으로 술과 관계되는 시는 없다. 아마도 술에 취한 후에 흥취가 생겼을 때 지었던 시들을 모아 ‘음주’라는 제목으로 묶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관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과 전원생활을 하면서 맛보게 된 다양한 감회 등을 시로 적어낸 것이다. 역자가 소개한 이 시는 그 연작시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이다.
* 陶淵明(도연명, 365~427) : 중국 동진의 시인으로 이름은 잠(潛)이고 ‘연명’은 그의 자이다. 한편 ‘연명’이 본명이고 자가 ‘원량(元亮)’이라는 설도 있다.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다.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시 외의 산문 작품으로는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 結廬(결려) : 오두막을 짓다, 지어둔 오두막. / 在(재) : ~에 있다. / 人境(인경) : 사람이 <많이> 살고있는 지역.
* 而(이) : 그러나. 역접 접속사이다. / 無(무) : ~이 없다. / 車馬喧(거마훤) : 수레와 말이 시끄럽다,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 問君(문군) : 그대에게 묻노라, 묻노니 그대는. / 何能爾(하능이) :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爾’는 ‘然(연)’의 뜻이다.
* 心遠(심원) : 마음이 멀다, 마음에 관심을 두지 않다. / 地自偏(지자편) : 땅이 저절로 외지게 되다.
* 採菊(채국) : 국화 <송이>를 따다. / 東籬下(동리하) : 동녘 울타리 아래, 동녘 울타리 아래에서.
* 悠然(유연) : 유연히, 유유히. / 見南山(견남산) : 남산이 보이다.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 山氣(산기) : 산의 기운, 산기운. / 일석(日夕) : 저녁 어스름, 저녁 어스름에. / 佳(가) : 아름답다.
* 飛鳥(비조) : 날아가는 새, 날던 새. / 相與(상여) : 서로 더불어, 함께. / 還(환) : 돌아가다, 돌아오다.
* 此中(차중) : 이 안에, 이 가운데에. / 有眞意(유진의) : 참된 뜻이 있다.
* 欲辯(욕변) : 말하고자 하다. / 已(이) : 이미, 벌써. / 忘言(망언) : <할> 말을 잊어버리다.
[번역]
음주 5
사람이 많은 곳에 오두막을 지었지만
수레며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다네
묻노라,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땅이 저절로 외지게 되어서네
동녘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송이 따노라니
유유히 남산이 보이네
산 기운은 저녁 어스름에 아름다운데
날던 새들이 서로 더불어 돌아가네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어
무어라 말하려다 할 말 이미 잊어버렸네
[한역노트]
우리 선조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중국 시인으로는 당대(唐代)의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백(李白)·두보(杜甫)·왕유(王維)와 함께, 진대(晉代)의 도연명(陶淵明)과 송대(宋代)의 소동파(蘇東坡) 정도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도연명은, 벼슬길과는 거리가 멀어 초야에 묻혀 살았던 선비들이나, 벼슬길에 들었더라도 뜻을 얻지 못했던 인사들이 가장 사랑했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는 그런 도연명의 시 가운데서도 우리 선조들이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다.
20수로 이루어진 「음주(飮酒)」라는 제목의 연작시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인 이 시는 총 10구(句)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前) 4구와 후(後) 6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 4구는, 세속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수도자(修道者)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세속의 혼탁함에 물들지 않는 은자(隱者)의 풍모를 비유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후 6구는, 시인 자신이 어느 가을날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마주하게 된 대자연의 풍경과 거기서 길어 올려진 감수를 시화(詩化)시킨 것이다.
난세에 잠시 벼슬길에 들었다가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일종의 은퇴성명서를 발표한 후에, 벼슬에 대한 꿈을 깨끗이 접고 전원(田園)에 묻혀 살며 국화(菊花)와 술을 사랑했던 도연명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은일시인(隱逸詩人)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 곳곳에서 그가 은일시인임을 알게 해주는 소품(小品)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화이다. 그런데 이 국화가 왜 은자의 꽃이 되었을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화의 용도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화는 꽃 자체를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술을 담그거나 차로 끓이는 것은 물론, 화전(花煎)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용도가 무척이나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덜 알려진 국화의 용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응달에 말린 국화를 베개 속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화에서 발산되는 일종의 파(波)가 머리의 피를 맑게 하여 숙면을 이루게 하고 치매나 중풍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그 옛날의 은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베개 속으로 사용했던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속속들이 다 밝힐 수는 없다 하여도, 용처가 많은 국화를 옛날부터 은자들이 좋아하고 애용했기 때문에, 국화는 자연스레 은자의 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국화 베개를 달리 도사(道士) 베개로 부르기도 했다는 사실 같은 것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당시 도사들은 절대다수가 은자들이었다.
도사는 아니어도 은자였던 도연명은 이런저런 목적으로 국화를 따다가 남산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일삼아 남산을 보고자 해서 본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드는 순간에 남산이 저절로 보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위적인 행위이고, 저절로 눈길에 들어와 보게 되는 것은 인위성(人爲性)이 없는 자연스러운 조우(遭遇)이다. 그러므로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을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네.”가 아니라, “유유히 남산이 보이네.”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고급스럽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대상’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므로 굳이 ‘나’와 ‘대상’을 차별 지을 필요가 없다. 이런 경지를 옛사람들은 ‘물아교융(物我交融)’이라는 문학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대상[物]’과 ‘나[我]’가 한데 어우러져[交融]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의 극치 정도로 이해해두면 무방하다.
국화와 남산 얘기에 이어, 도연명은 저녁 어스름의 아름다운 산 기운과 짝을 지어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을 언급하면서, ‘이 가운데’에 참된 뜻[眞意]이 있음을 담담하게 인식하였다. 도연명이 언급한 ‘이 가운데’가 단순히 ‘해가 질 무렵의 전원 마을 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대자연이나 대자연의 숭고함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참된 뜻’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도연명은, 무어라 말하려고 하였는데 이미 할 말을 잊어버렸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자가 보기에 도연명이 얘기한 ‘참된 뜻’이 가리키는 것을 논리적으로 추단(推斷)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역자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무어라 말하려고 했던 것을 말로 나타내려는 순간에 잊어버렸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더 나아가 ‘참된 뜻’은 말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두루 포괄하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대자연의 숭고한 섭리 앞에서 경건함 등을 느끼면 될 뿐, 그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굳이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때로는 ‘말 없음’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국화를 따자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올해도 국화는 어김없이 피어 그 향기로 산길이며 들녘을 적실 것이다. 어느 시인이 국화가 없다면 가을이 가을일 수 없다고 하였으니, 국화를 가을의 꽃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국화가 산야(山野)에 흐드러지는 시기가 되면, 국화 베개 만들어볼 요량으로 적당한 날을 잡아 배낭 하나 메고 국화를 따러 가고 싶다. 홀로 가는 길이라 하여도 청아한 가을 햇살과 맑은 바람만큼은 역자와 함께 해주지 않겠는가!
오늘 소개한 이 시는 10구로 구성된 오언고시(五言古詩)로 짝수구에 압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喧(훤)’, ‘偏(편)’, ‘山(산)’, ‘還(환)’, ‘言(언)’이 된다.
2024. 9. 2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飮酒(음주) 5
陶淵明(도연명)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주석]
* 飮酒(음주) :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20수로 구성된 연작시의 제목이다. 시의 제목이 ‘음주’이기는 하나 직접적으로 술과 관계되는 시는 없다. 아마도 술에 취한 후에 흥취가 생겼을 때 지었던 시들을 모아 ‘음주’라는 제목으로 묶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관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과 전원생활을 하면서 맛보게 된 다양한 감회 등을 시로 적어낸 것이다. 역자가 소개한 이 시는 그 연작시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이다.
* 陶淵明(도연명, 365~427) : 중국 동진의 시인으로 이름은 잠(潛)이고 ‘연명’은 그의 자이다. 한편 ‘연명’이 본명이고 자가 ‘원량(元亮)’이라는 설도 있다.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다.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시 외의 산문 작품으로는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 結廬(결려) : 오두막을 짓다, 지어둔 오두막. / 在(재) : ~에 있다. / 人境(인경) : 사람이 <많이> 살고있는 지역.
* 而(이) : 그러나. 역접 접속사이다. / 無(무) : ~이 없다. / 車馬喧(거마훤) : 수레와 말이 시끄럽다,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 問君(문군) : 그대에게 묻노라, 묻노니 그대는. / 何能爾(하능이) :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爾’는 ‘然(연)’의 뜻이다.
* 心遠(심원) : 마음이 멀다, 마음에 관심을 두지 않다. / 地自偏(지자편) : 땅이 저절로 외지게 되다.
* 採菊(채국) : 국화 <송이>를 따다. / 東籬下(동리하) : 동녘 울타리 아래, 동녘 울타리 아래에서.
* 悠然(유연) : 유연히, 유유히. / 見南山(견남산) : 남산이 보이다.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 山氣(산기) : 산의 기운, 산기운. / 일석(日夕) : 저녁 어스름, 저녁 어스름에. / 佳(가) : 아름답다.
* 飛鳥(비조) : 날아가는 새, 날던 새. / 相與(상여) : 서로 더불어, 함께. / 還(환) : 돌아가다, 돌아오다.
* 此中(차중) : 이 안에, 이 가운데에. / 有眞意(유진의) : 참된 뜻이 있다.
* 欲辯(욕변) : 말하고자 하다. / 已(이) : 이미, 벌써. / 忘言(망언) : <할> 말을 잊어버리다.
[번역]
음주 5
사람이 많은 곳에 오두막을 지었지만
수레며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다네
묻노라,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땅이 저절로 외지게 되어서네
동녘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송이 따노라니
유유히 남산이 보이네
산 기운은 저녁 어스름에 아름다운데
날던 새들이 서로 더불어 돌아가네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어
무어라 말하려다 할 말 이미 잊어버렸네
[한역노트]
우리 선조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중국 시인으로는 당대(唐代)의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백(李白)·두보(杜甫)·왕유(王維)와 함께, 진대(晉代)의 도연명(陶淵明)과 송대(宋代)의 소동파(蘇東坡) 정도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도연명은, 벼슬길과는 거리가 멀어 초야에 묻혀 살았던 선비들이나, 벼슬길에 들었더라도 뜻을 얻지 못했던 인사들이 가장 사랑했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는 그런 도연명의 시 가운데서도 우리 선조들이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다.
20수로 이루어진 「음주(飮酒)」라는 제목의 연작시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인 이 시는 총 10구(句)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前) 4구와 후(後) 6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 4구는, 세속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수도자(修道者)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세속의 혼탁함에 물들지 않는 은자(隱者)의 풍모를 비유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후 6구는, 시인 자신이 어느 가을날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마주하게 된 대자연의 풍경과 거기서 길어 올려진 감수를 시화(詩化)시킨 것이다.
난세에 잠시 벼슬길에 들었다가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일종의 은퇴성명서를 발표한 후에, 벼슬에 대한 꿈을 깨끗이 접고 전원(田園)에 묻혀 살며 국화(菊花)와 술을 사랑했던 도연명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은일시인(隱逸詩人)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 곳곳에서 그가 은일시인임을 알게 해주는 소품(小品)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화이다. 그런데 이 국화가 왜 은자의 꽃이 되었을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화의 용도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화는 꽃 자체를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술을 담그거나 차로 끓이는 것은 물론, 화전(花煎)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용도가 무척이나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덜 알려진 국화의 용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응달에 말린 국화를 베개 속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화에서 발산되는 일종의 파(波)가 머리의 피를 맑게 하여 숙면을 이루게 하고 치매나 중풍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그 옛날의 은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베개 속으로 사용했던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속속들이 다 밝힐 수는 없다 하여도, 용처가 많은 국화를 옛날부터 은자들이 좋아하고 애용했기 때문에, 국화는 자연스레 은자의 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국화 베개를 달리 도사(道士) 베개로 부르기도 했다는 사실 같은 것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당시 도사들은 절대다수가 은자들이었다.
도사는 아니어도 은자였던 도연명은 이런저런 목적으로 국화를 따다가 남산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일삼아 남산을 보고자 해서 본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드는 순간에 남산이 저절로 보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위적인 행위이고, 저절로 눈길에 들어와 보게 되는 것은 인위성(人爲性)이 없는 자연스러운 조우(遭遇)이다. 그러므로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을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네.”가 아니라, “유유히 남산이 보이네.”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고급스럽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대상’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므로 굳이 ‘나’와 ‘대상’을 차별 지을 필요가 없다. 이런 경지를 옛사람들은 ‘물아교융(物我交融)’이라는 문학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대상[物]’과 ‘나[我]’가 한데 어우러져[交融]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의 극치 정도로 이해해두면 무방하다.
국화와 남산 얘기에 이어, 도연명은 저녁 어스름의 아름다운 산 기운과 짝을 지어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을 언급하면서, ‘이 가운데’에 참된 뜻[眞意]이 있음을 담담하게 인식하였다. 도연명이 언급한 ‘이 가운데’가 단순히 ‘해가 질 무렵의 전원 마을 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대자연이나 대자연의 숭고함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참된 뜻’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도연명은, 무어라 말하려고 하였는데 이미 할 말을 잊어버렸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자가 보기에 도연명이 얘기한 ‘참된 뜻’이 가리키는 것을 논리적으로 추단(推斷)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역자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무어라 말하려고 했던 것을 말로 나타내려는 순간에 잊어버렸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더 나아가 ‘참된 뜻’은 말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두루 포괄하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대자연의 숭고한 섭리 앞에서 경건함 등을 느끼면 될 뿐, 그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굳이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때로는 ‘말 없음’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국화를 따자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올해도 국화는 어김없이 피어 그 향기로 산길이며 들녘을 적실 것이다. 어느 시인이 국화가 없다면 가을이 가을일 수 없다고 하였으니, 국화를 가을의 꽃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국화가 산야(山野)에 흐드러지는 시기가 되면, 국화 베개 만들어볼 요량으로 적당한 날을 잡아 배낭 하나 메고 국화를 따러 가고 싶다. 홀로 가는 길이라 하여도 청아한 가을 햇살과 맑은 바람만큼은 역자와 함께 해주지 않겠는가!
오늘 소개한 이 시는 10구로 구성된 오언고시(五言古詩)로 짝수구에 압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喧(훤)’, ‘偏(편)’, ‘山(산)’, ‘還(환)’, ‘言(언)’이 된다.
2024. 9. 2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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