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9·19 남북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라며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 내놓은 ‘반(反)통일 두 국가 선언’을 거론하며 “변화된 조건들이 반영되지 않은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노선 변경에 맞장구 치자는 소리로 들린다. 그는 통일부와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제안했다.

임 실장의 발언은 사실상 자기부정이다. 그는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아왔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때 임수경의 방북을 주도하며 ‘조국 통일 염원’을 외쳤다. 문재인 정부 통일정책도 주도했다. 2019년 정계 은퇴 땐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180도 돌변에 대해 김정은의 발언과 관계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이 나오기 전엔 왜 이런 말을 못 했나. 임 전 실장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규정까지 삭제하자고 했다. 북한에서 중대 사태가 벌어질 경우 한국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탈북민 등 북한 주민이 우리 국민으로 인정되는 근거인데, 이야말로 반헌법·반국가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규정에 따라 기존의 평화 담론과 통일 담론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보조를 맞췄다. “대한민국 정부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들”이라면서 “그러나 현 정부는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다”고도 했다. 김정은의 ‘두 국가’를 비판하면서도 역시 북한의 궤도 수정에 우리 정부가 따라야 한다는 재촉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여정의 한마디에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다. 김정은의 비핵화가 진심이라며 중재론을 내세워 미국에 보증까지 섰다. 그 결과 북한에 핵과 미사일 괴물로 변할 시간을 벌어줬다. 그래 놓고 문 정부 핵심 두 사람이 통일론마저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꿔 김정은에게 주파수를 맞추자고 한다. 언제까지 시대착오적이고 의미도 없는 통일론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