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목화마을' 문래동의 변신
서울 문래동(文來洞)은 한국 최초의 주식회사인 경성방직이 1923년 첫 방직공장을 세운 곳이다. 이후에 동양방적과 종연방적 등이 들어오면서 초기 국내 섬유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동네 이름도 유실동(실이 있는 동네)과 사옥정(絲屋町·실을 뽑는 마을)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인 1946년 공식적으로 영등포구 사옥동이 됐다. 그 어느 곳보다 방적기가 많은 점에 착안해 1952년 방적기의 우리말인 ‘물레’를 음차한 ‘문래’로 동 이름을 바꿨다. 현재까지 문래동에 물레 모형 조각품과 목화밭이 많은 이유다.

목화마을이던 문래동이 철강 타운으로 변한 건 1960년대다. 1968년 포항제철이 설립된 뒤 철강 수요가 급증하던 때다. 마침 청계천 고가도로 건설로 인근 철공소들이 경인고속도로 근처인 문래동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세운상가에서 철거된 철공소까지 가세하면서 문래동은 국내 최대 철공단지로 발전했다. 어떤 부품과 시제품이든 문래동 철공소 몇 곳만 거치면 2~3일 내 완성됐다. ‘문래동 장인 10명이 모이면 탱크도 만든다’거나 ‘철판으로 사람 빼고 못 만드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문래동 철공소의 아성은 1990년대 급격히 흔들렸다. 주변 지역인 목동과 영등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문래동도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다. 1997년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철공소가 대거 문을 닫거나 임차료가 싼 서울 외곽으로 이전했다. 그 자리엔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고 옛 철공소 터는 예술인들의 작업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직 남아 있는 철공소들도 언제까지 문래동의 높은 임차료를 견디며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했다. 1000여 개의 문래동 철공소를 경기 김포나 시흥 같은 수도권 그린벨트로 모두 이전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문래동은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업 등으로 채워 스마트 산업밸리로 바꿀 계획이다. 전통산업 중심지에서 첨단 융복합 단지로 탈바꿈한 성수동과 가산동이 벤치마킹 사례다. 문래동의 미래 모습이 어떨지 기대된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