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든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2026년 내놓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철분말 공급을 맡는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국내 건설 경기 부진 여파로 ‘본업’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다.
현대제철, 배터리 소재 공급망 뛰어든다

○배터리 공급망에 처음 진출

20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양극재 개발업체인 엘앤에프, 에코프로비엠, LG화학 등과 함께 LFP 배터리에 들어갈 철분말 품질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LFP 배터리는 리튬, 인산, 철로 구성된 양극재를 쓰는데, 이 중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리튬과 인산은 해외에서 조달하지만 철은 국내에서 납품받을 수 있다. 현대제철은 자동차 부품 등에 쓰기 위해 오래전부터 철분말을 생산해왔다.

업계에선 현대제철이 철분말 생산 경험을 충분히 쌓은 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배터리 소재 기업이 만드는 양극재에 투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제철 철분말을 활용해 만든 LFP 배터리는 2026년부터 국내외 전기차에 탑재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현대제철의 초기 납품 물량이 연 5만~6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기차 100만 대에 들어갈 수 있는 물량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 모두 2026년부터 LFP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만 생산했지만, 중저가 전기차 시장이 커지자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섰다. 이에 발맞춰 엘앤에프, 에코프로비엠, LG화학 등 소재사들도 LFP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 양산 작업에 들어갔고, 철분말 공급업체로 현대제철을 사실상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앤에프와 에코프로비엠은 내년 말부터 LFP용 양극재 양산에 들어가고, LG화학은 2027년 시작할 계획이다.

○“철강 부진 만회할 신사업 집중”

현대제철이 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에 뛰어든 건 본업인 철강 시장이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 상태인 중국 철강업체들이 ‘밀어내기 수출’에 나선 탓에 현대제철의 수익성은 급락하고 있다. 여기에 철강 시장의 ‘큰손’인 국내 건설업체 수요마저 빠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제철의 영업이익은 2021년 2조4475억원에서 올해 4503억원으로 곤두박질할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상하고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국내 건설 경기 침체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 높다는 점에서 당분간 철강으로 돈 벌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대제철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눈을 돌린 이유다. 업계에선 향후 전기차 시대가 활짝 열리면 현대제철의 철분말 사업 매출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배터리 소재사 관계자는 “국산 LFP 배터리가 중국산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을 차례차례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배터리업체→양극재업체→양극재 소재업체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에 들어간 현대제철도 상당한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