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한 가락으로 마음을 달래보세요, 하품해도 괜찮아요"
"물외에 좋은 일이 어부생애 아니런가 / 배 띄워라 배 띄워라 / 어옹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더라…." (윤선도 '어부사시사' 추사 중 1수)

느리게 울려퍼지는 전통 악기의 소리에 명상에 쓰이는 '싱잉볼'이 울린다. 여창 가객(전통 가수)이 윤선도의 시조를 노래로 옮기니, 뱃사공이 읊는 가을 정취가 그려진다.

시조로 된 '정가'를 부르는 가객 박희수(34)가 다음달 10일 '추야(가을밤)'이라는 주제로 관객을 만난다. 정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 전통 성악이다. 정가의 역사는 조선왕조 세종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악이라는 음악이 확립되면서, 정가가 하부 장르가 됐다. 양반들이 즐겨부르던 노래인데 남창과 여창이 나뉘어있고 노랫말들은 가곡, 가사, 시조에서 따왔다. 문학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데 지난 2020년, 영화 '해어화'를 통해 정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자연을 벗삼아 노래하는 정가로 사계절을 모두 그려보고 싶다"는 박희수는 서울 송파구에 마련된 석촌호수 아뜰리에에서 가을의 심상을 전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음악마저도 빠른 템포가 인기를 얻는 시대에 그는 정가로 느림의 미학을 주장한다.

"느린 노래가 지루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을 공연을 통해 마련하셨으면 합니다. 가사를 음미하고, 싱잉볼 소리에 하품도 하시면서요(웃음)."
"느릿한 가락으로 마음을 달래보세요, 하품해도 괜찮아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정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박희수는 대학교(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에 진학한 이래 고민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은 민요, 판소리 등 신나고 재밌는 걸 공부하는데 정가가 너무 잔잔해 주목을 못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방황을 했어요. 하지만 제 정서에는 정가만큼 어울리는게 없었죠. 마음을 다잡고 매진했습니다."

국가무형유산 가곡 이수자인 그는 정가를 더 알리기 위해 노력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악기와 소리를 함께 하는 연주인 병창 분야에서 독보적인 문을 열었다. 보통 정가의 병창은 거문고로 진행이 되지만 그는 전통 악기 중에서도 희소한 양금을 선택했다. 박희수는 "내 소리만의 무기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쇠줄을 두드리는 양금이란 악기 소리가 정가와 잘 어우러져 보여서, 양금 병창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느릿한 가락으로 마음을 달래보세요, 하품해도 괜찮아요"
이번 공연에서도 양금 병창이 준비됐다. 이수대엽 '이화우'를 양금 병창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이별의 그리움을 밤하늘의 별과 함께 노래하는데 양금의 청량한 소리가 돋보일 예정이다.

가을달의 경치를 표현한 우조 시조 '월정명'을 싱잉볼과 함께 들려준다. 하늘의 달, 물 속의 달, 술잔 속의 달을 노래하며 시조의 낭만을 전할 예정. 박희수는 "정가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피아노 반주, 양금, 싱잉볼, 피리, 가야금 등 다양한 악기도 공연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