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의 20세기 갇힌 한반도…역동적 '문화국가'로 출구전략 짜라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기고 -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130년 前 근대국가 구상한 유길준
국가의 항로 수정하는 '정치'에 주목
"시세와 처지에 따라 국가를 보수하는
그 주체는 정부 혹은 정당정치"
21세기 문명대변혁 쓰나미에
기존 경제논리·정치문법 흔들려
130년 前 근대국가 구상한 유길준
국가의 항로 수정하는 '정치'에 주목
"시세와 처지에 따라 국가를 보수하는
그 주체는 정부 혹은 정당정치"
21세기 문명대변혁 쓰나미에
기존 경제논리·정치문법 흔들려
조망과 처방
시대 전환의 거대한 물결을 온몸으로 감당한 선각자가 그리운 시간이다. 조선이 풍전등화에 놓인 19세기 말 구당(矩堂) 유길준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미국과 유럽을 돌아 귀국한 그는 갑신정변에 연루된 죄로 가택연금을 당하자 민영익이 내준 별장 취운정에서 개혁 설계도를 그렸다. 조망과 처방, 한국 최초의 근대국가 구상인 <서유견문>이 그렇게 나왔다. 갑오경장 당시 실행하려 했지만 조선의 기운은 이미 쇠락한 뒤였다. 제3편 ‘방국의 권리’에서 주권국가와 인민의 요건을 논했다. 입헌군주제의 조선적 표현인 군민공치, 근대적 시장윤리인 경려(競勵) 개념이 출현했다. 만국공법에 의거, 청(淸)과 일본의 압박에 시달리던 조선에 양단(兩端)의 관계 맺음은 다를 수 있다는 양절(兩截)체제 해법을 제시했다. 문명변혁기 조선의 ‘시세와 처지’를 바꾸려는 획기적인 변통(變通)이었다. 그중 국가 항로를 제때 수정하는 정치의 역할이 눈에 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때(처지)를 보아 세(시세)에 응한 뒤 국가를 보수(補修)할 수 있다…정부의 사무는 (그것인데)…때에 따라 응하는 도(道)는 여름에 갈옷을, 겨울에 갖옷을 입는 것과 같다”(장인성, <서유견문>). 시세와 처지에 따라 국가를 보수하는 주체가 정부(혹은 정당정치)라는 사실은 이미 130년 전에 천명됐다.
흔들리는 지축
한국은 유길준의 설계 이후 거대한 좌절(식민)과 거대한 비극(내전)을 거쳐 선진국에 도달했다. <서유견문>이 이상정치로 개념화한 미정(美政)은 아닐지라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정치적 목표를 일궈냈다.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이자 민주국가인 ‘30-50 클럽’(인구 5000만 명,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가입한 최초의 국가가 됐다. 허점투성이인 채로 말이다. 이런 역사적 성취 뒤에 눈물과 희생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뿌듯하고 흐뭇한 것은 잠시, 세계를 뒤흔드는 쓰나미가 다시 몰려들었다. 21세기 ‘문명대변혁’이 그것인데, 기존의 경제 논리와 정치 문법을 회오리 속에 몰아넣었다. 20세기를 좌지우지한 G10(주요 10개국) 강대국은 새로운 위협과 도전에 대응하느라 몸살을 앓는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이 잉태한 ‘과학독주의 시대’에 한국도 경제 동력과 사회제도를 교체해야 한다.
21세기 문명대변혁은 허점투성이 한국의 공든 탑을 쉽사리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국민의 피와 땀이 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바뀌고 있으며, 군부독재를 딛고 이룩한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에 침식당하고 있다. 지축이 흔들린다.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은 <신서유견문>과 같은 새로운 설계도, 국가의 경신(更新)에 온 힘을 기울일 21세기형 정치가 절박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70년 전 해방정국을 재현한다.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고, 붕당 정치인들이 설쳐댄다. 좌우 이념투쟁과 정체성 시비에 모든 공력을 낭비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행태가 한심하기 그지없는 요즘이다. 국가 철학은커녕 국가 운영원리라는 원론적 개념조차 증발한 상황이 됐다.
자유주의 결핍
민주주의는 경제 성장, 단일 민족국가, 엘리트 중심의 공론장과 친화력을 갖는다. 20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경제는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국민국가 구성원의 이질성이 높아졌으며, SNS의 발달이 공론장 분열을 가속화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극단 세력과 정치 테러가 빈발하는 이유다. 그래도 구미는 자유주의 역량이 커서 복원력이 작동한다. 한국이 문제다.
한국은 강대국 중 자유주의 역사가 가장 미천하다. 민주주의라는 무거운 체제가 얄팍하게 깔린 자유주의에 무작정 내려앉은 꼴이다.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개화한 한국의 자유주의가 권리의 난투장이 된 까닭이다. 권리-책무라는 자유주의 두 바퀴 중 책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응분의 몫’을 찾는 권리투쟁에서 유길준이 그토록 강조한 통의(通義)는 짓눌렸다. 공익적 관심, 공공성을 위한 시민윤리가 통의다. 그 덕목의 결핍으로 자유주의는 곧 권리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특정 집단의 항의가 무작정 민심(民心)으로 둔갑해 충돌했다. 자유주의 결핍이 낳은 오류이자 탈선이다.
민주화 37년간 등장한 일곱 차례의 정권이 모두 전 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출범한 것에는 예외가 없다. 정통성을 새로 세우겠다는 의욕은 5년 후에 척결(剔抉) 후유증과 적의(敵意)를 남겨 놓고 퇴장했다. 후유증은 37년간 쌓여 급기야 증오의 정치로 치달았다.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민과 시민단체도 광장에서 충돌하기를 반복했다. 광화문광장은 적대적 선전포고를 고하는 분열의 상징이 됐다. 그것이 정의를 찾는 눈물겨운 의지라고 항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유주의가 취약한 민주정치의 서글픈 풍경이다. 그러니 어떻게 좌우가 둘러앉아 국가의 진로와 비전을 논하고 모색할 공간이 생기겠는가. 두 개의 국가정체성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개의 분절선이 자유주의의 성장을 가로막기는 했다. 국가정체성도 두 개로 나뉘어 대립했다. 대한해협을 가로지르는 ‘역사분절선’과 비무장지대(DMZ)로 표상되는 ‘군사분절선’이 그것이다. 식민지와 6·25전쟁의 원한을 집약한 두 개의 분절선은 좌·우파 이념투쟁의 원천이다. 좌파는 역사분절선을 고수하고, 우파는 군사분절선을 방어한다. 좌파가 죽창가를 부르고 북한을 민족 테두리에 넣는 반면, 우파는 반북과 친일·친미적 유화 태도를 고수한다. 양자 간 타협은 배신이다.
두 개의 분절선은 4대 강대국의 이해 갈등 속에서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 충돌’의 원천으로 개념화한 ‘단층선’으로 고착됐다. 한국 정치가 그렇게 이분화한 마당에 국가 비전과 철학 구상은 항상 분쟁으로 치닫는다. 협소하고 얇은 자유주의는 국제 역학으로 강화된 이분법적 대결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한계와 내부 모순을 안은 채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21세기 비전: 문화국가
이것이 21세기 문명의 거대한 변혁 속에 한국이 처한 ‘시세와 처지’다. 유길준 선생이라면 ‘새로운 변통’을 요청했을 것이다.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20세기 유산인 이념투쟁은 한국의 미래가 나아갈 길을 폐쇄하고, 한국을 가둔 두 개의 분절선은 한반도를 미래의 전쟁터로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한반도 주변에 세계 무력의 60%가 배치된 상황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찾는 해법이 ‘K컬처’에 내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K컬처는 한국적 습속의 현대적 변용이다. 우리의 생활양식과 습속에 세계인의 갈증과 좌절을 해소하는 공감대와 미적·모순적 요소가 들어 있다! 드라마, 음악과 예술, 음식, 공예에 스민 한국적 정서와 창의적 욕망을 세계적 감각과 융합한 결과인데 그 결합 과정에 국가주의는 없었다. 좌우 대립도, 두 개의 단층선도 개입하지 못한다. 한국적 춤사위와 흥이 세계적 정서와 결합해 K팝이 탄생했다. 비디오아트의 대가 백남준은 자신을 한국을 파는 문화 상인으로 불렀다. 세계적 감각을 습득하지 않으면 한국의 고뇌가 팔리겠는가. 한국의 내부 역량과 모순적 위상을 세계적 시선과 접목하는 비전으로서 ‘문화국가’(Kulturstaat)를 상정할 수 있겠다.
문화국가의 개념은 논자마다 다르다. 법률, 권력 같은 물리적 국가기구에 호소하는 강성국가를 지양하고 자율과 신뢰를 배양해 획일적 국가주의를 넘어서려는 연성국가다. 첨단 과학기술의 효용성과 한계를 동시에 가늠하면서 문명적 한계와 인류사적 고뇌를 창의적 공간으로 승화하는 집단의지의 결집체다. 조지프 나이가 강성 패권의 호전성을 대체할 연성권력(soft power)을 제시했듯, 문화국가는 매력과 상징 자원을 국부의 원천으로 추구한다. 군사력과 기술력에 평화 공존의 백신을 주입하는 힘이다. 한국이 처한 냉엄한 현실이 당장 허용하지 않겠지만, 원대한 포부로 설정할 가치는 있다.
매력 한국 구상
한국은 20세기형 모순이 응축된 국가다. 우리의 정치는 미래의 한국을 ‘모순의 감옥’에 가둬 눈을 멀게 할 것이다. 문명의 명령에 갇힌다. 허위와 과장이 판치는 강성 패권주의로는 문명의 흥망과 그 원인 진단의 능력을 잃는다. 문명은 항상 성쇠를 거듭했다. 현실 흐름에 대한 긴장과 비판 능력, 통찰이야말로 문화국가로 가는 오솔길을 연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권역에 세계인의 원망(願望)과 고초(苦楚), 진보와 좌절이 부딪혀 새로운 영혼을 피우는 공감과 통찰의 벤처국가를 구상하면 어떨까. 그것을 ‘매력 한국’(attractive Korea)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들숨과 날숨 속에 20세기적 모순의 해소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 첫걸음, 기반 닦기로 두 가지 기획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첫째, 개방 확대. 민족주의에 갇힌 국경과 마음의 문을 열어 글로벌 자본, 문화, 세계인이 들며 나는 문명 치유의 대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벌써 15년 전 교육, 가족, 이민정책의 닫힌 문을 열라고 한국에 주문한 바 있다. 특히 신분과 차별 기제인 20세기형 한국 교육은 고려장의 대상이다.
둘째, 문화국가라면 세계인이 겪는 현실 파괴적 현상에 대해 대응책과 영원한 치유책을 동시에 구상하고 호소해야 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장기적 대안을 몽상(夢想)으로 내친다. 그것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비판적 통찰력은 비단 지식인만의 임무는 아니다. 미래 식견을 수렴하는 문화 공론장이 업종과 직종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작동해야 한다. 리바이어던(강성국가)에 족쇄를 채우는 주체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개인과 공동체마다 마음과 현실 공간에 창의적 공방(工房)을 가꿔야 한다. 공방은 연성권력을 생산하는 소중한 단위다.
문화국가, 정치권이 세계 무대로 나아간 K컬처의 작은 비밀이라도 체득해 국가 보수(補修)에 나선다면 한국의 미래와 후세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시대 전환의 거대한 물결을 온몸으로 감당한 선각자가 그리운 시간이다. 조선이 풍전등화에 놓인 19세기 말 구당(矩堂) 유길준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미국과 유럽을 돌아 귀국한 그는 갑신정변에 연루된 죄로 가택연금을 당하자 민영익이 내준 별장 취운정에서 개혁 설계도를 그렸다. 조망과 처방, 한국 최초의 근대국가 구상인 <서유견문>이 그렇게 나왔다. 갑오경장 당시 실행하려 했지만 조선의 기운은 이미 쇠락한 뒤였다. 제3편 ‘방국의 권리’에서 주권국가와 인민의 요건을 논했다. 입헌군주제의 조선적 표현인 군민공치, 근대적 시장윤리인 경려(競勵) 개념이 출현했다. 만국공법에 의거, 청(淸)과 일본의 압박에 시달리던 조선에 양단(兩端)의 관계 맺음은 다를 수 있다는 양절(兩截)체제 해법을 제시했다. 문명변혁기 조선의 ‘시세와 처지’를 바꾸려는 획기적인 변통(變通)이었다. 그중 국가 항로를 제때 수정하는 정치의 역할이 눈에 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때(처지)를 보아 세(시세)에 응한 뒤 국가를 보수(補修)할 수 있다…정부의 사무는 (그것인데)…때에 따라 응하는 도(道)는 여름에 갈옷을, 겨울에 갖옷을 입는 것과 같다”(장인성, <서유견문>). 시세와 처지에 따라 국가를 보수하는 주체가 정부(혹은 정당정치)라는 사실은 이미 130년 전에 천명됐다.
흔들리는 지축
한국은 유길준의 설계 이후 거대한 좌절(식민)과 거대한 비극(내전)을 거쳐 선진국에 도달했다. <서유견문>이 이상정치로 개념화한 미정(美政)은 아닐지라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정치적 목표를 일궈냈다.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이자 민주국가인 ‘30-50 클럽’(인구 5000만 명,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가입한 최초의 국가가 됐다. 허점투성이인 채로 말이다. 이런 역사적 성취 뒤에 눈물과 희생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뿌듯하고 흐뭇한 것은 잠시, 세계를 뒤흔드는 쓰나미가 다시 몰려들었다. 21세기 ‘문명대변혁’이 그것인데, 기존의 경제 논리와 정치 문법을 회오리 속에 몰아넣었다. 20세기를 좌지우지한 G10(주요 10개국) 강대국은 새로운 위협과 도전에 대응하느라 몸살을 앓는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이 잉태한 ‘과학독주의 시대’에 한국도 경제 동력과 사회제도를 교체해야 한다.
21세기 문명대변혁은 허점투성이 한국의 공든 탑을 쉽사리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국민의 피와 땀이 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바뀌고 있으며, 군부독재를 딛고 이룩한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에 침식당하고 있다. 지축이 흔들린다.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은 <신서유견문>과 같은 새로운 설계도, 국가의 경신(更新)에 온 힘을 기울일 21세기형 정치가 절박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70년 전 해방정국을 재현한다.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고, 붕당 정치인들이 설쳐댄다. 좌우 이념투쟁과 정체성 시비에 모든 공력을 낭비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행태가 한심하기 그지없는 요즘이다. 국가 철학은커녕 국가 운영원리라는 원론적 개념조차 증발한 상황이 됐다.
자유주의 결핍
민주주의는 경제 성장, 단일 민족국가, 엘리트 중심의 공론장과 친화력을 갖는다. 20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경제는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국민국가 구성원의 이질성이 높아졌으며, SNS의 발달이 공론장 분열을 가속화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극단 세력과 정치 테러가 빈발하는 이유다. 그래도 구미는 자유주의 역량이 커서 복원력이 작동한다. 한국이 문제다.
한국은 강대국 중 자유주의 역사가 가장 미천하다. 민주주의라는 무거운 체제가 얄팍하게 깔린 자유주의에 무작정 내려앉은 꼴이다.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개화한 한국의 자유주의가 권리의 난투장이 된 까닭이다. 권리-책무라는 자유주의 두 바퀴 중 책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응분의 몫’을 찾는 권리투쟁에서 유길준이 그토록 강조한 통의(通義)는 짓눌렸다. 공익적 관심, 공공성을 위한 시민윤리가 통의다. 그 덕목의 결핍으로 자유주의는 곧 권리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특정 집단의 항의가 무작정 민심(民心)으로 둔갑해 충돌했다. 자유주의 결핍이 낳은 오류이자 탈선이다.
민주화 37년간 등장한 일곱 차례의 정권이 모두 전 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출범한 것에는 예외가 없다. 정통성을 새로 세우겠다는 의욕은 5년 후에 척결(剔抉) 후유증과 적의(敵意)를 남겨 놓고 퇴장했다. 후유증은 37년간 쌓여 급기야 증오의 정치로 치달았다.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민과 시민단체도 광장에서 충돌하기를 반복했다. 광화문광장은 적대적 선전포고를 고하는 분열의 상징이 됐다. 그것이 정의를 찾는 눈물겨운 의지라고 항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유주의가 취약한 민주정치의 서글픈 풍경이다. 그러니 어떻게 좌우가 둘러앉아 국가의 진로와 비전을 논하고 모색할 공간이 생기겠는가. 두 개의 국가정체성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개의 분절선이 자유주의의 성장을 가로막기는 했다. 국가정체성도 두 개로 나뉘어 대립했다. 대한해협을 가로지르는 ‘역사분절선’과 비무장지대(DMZ)로 표상되는 ‘군사분절선’이 그것이다. 식민지와 6·25전쟁의 원한을 집약한 두 개의 분절선은 좌·우파 이념투쟁의 원천이다. 좌파는 역사분절선을 고수하고, 우파는 군사분절선을 방어한다. 좌파가 죽창가를 부르고 북한을 민족 테두리에 넣는 반면, 우파는 반북과 친일·친미적 유화 태도를 고수한다. 양자 간 타협은 배신이다.
두 개의 분절선은 4대 강대국의 이해 갈등 속에서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 충돌’의 원천으로 개념화한 ‘단층선’으로 고착됐다. 한국 정치가 그렇게 이분화한 마당에 국가 비전과 철학 구상은 항상 분쟁으로 치닫는다. 협소하고 얇은 자유주의는 국제 역학으로 강화된 이분법적 대결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한계와 내부 모순을 안은 채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21세기 비전: 문화국가
이것이 21세기 문명의 거대한 변혁 속에 한국이 처한 ‘시세와 처지’다. 유길준 선생이라면 ‘새로운 변통’을 요청했을 것이다.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20세기 유산인 이념투쟁은 한국의 미래가 나아갈 길을 폐쇄하고, 한국을 가둔 두 개의 분절선은 한반도를 미래의 전쟁터로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한반도 주변에 세계 무력의 60%가 배치된 상황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찾는 해법이 ‘K컬처’에 내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K컬처는 한국적 습속의 현대적 변용이다. 우리의 생활양식과 습속에 세계인의 갈증과 좌절을 해소하는 공감대와 미적·모순적 요소가 들어 있다! 드라마, 음악과 예술, 음식, 공예에 스민 한국적 정서와 창의적 욕망을 세계적 감각과 융합한 결과인데 그 결합 과정에 국가주의는 없었다. 좌우 대립도, 두 개의 단층선도 개입하지 못한다. 한국적 춤사위와 흥이 세계적 정서와 결합해 K팝이 탄생했다. 비디오아트의 대가 백남준은 자신을 한국을 파는 문화 상인으로 불렀다. 세계적 감각을 습득하지 않으면 한국의 고뇌가 팔리겠는가. 한국의 내부 역량과 모순적 위상을 세계적 시선과 접목하는 비전으로서 ‘문화국가’(Kulturstaat)를 상정할 수 있겠다.
문화국가의 개념은 논자마다 다르다. 법률, 권력 같은 물리적 국가기구에 호소하는 강성국가를 지양하고 자율과 신뢰를 배양해 획일적 국가주의를 넘어서려는 연성국가다. 첨단 과학기술의 효용성과 한계를 동시에 가늠하면서 문명적 한계와 인류사적 고뇌를 창의적 공간으로 승화하는 집단의지의 결집체다. 조지프 나이가 강성 패권의 호전성을 대체할 연성권력(soft power)을 제시했듯, 문화국가는 매력과 상징 자원을 국부의 원천으로 추구한다. 군사력과 기술력에 평화 공존의 백신을 주입하는 힘이다. 한국이 처한 냉엄한 현실이 당장 허용하지 않겠지만, 원대한 포부로 설정할 가치는 있다.
매력 한국 구상
한국은 20세기형 모순이 응축된 국가다. 우리의 정치는 미래의 한국을 ‘모순의 감옥’에 가둬 눈을 멀게 할 것이다. 문명의 명령에 갇힌다. 허위와 과장이 판치는 강성 패권주의로는 문명의 흥망과 그 원인 진단의 능력을 잃는다. 문명은 항상 성쇠를 거듭했다. 현실 흐름에 대한 긴장과 비판 능력, 통찰이야말로 문화국가로 가는 오솔길을 연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권역에 세계인의 원망(願望)과 고초(苦楚), 진보와 좌절이 부딪혀 새로운 영혼을 피우는 공감과 통찰의 벤처국가를 구상하면 어떨까. 그것을 ‘매력 한국’(attractive Korea)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들숨과 날숨 속에 20세기적 모순의 해소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 첫걸음, 기반 닦기로 두 가지 기획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첫째, 개방 확대. 민족주의에 갇힌 국경과 마음의 문을 열어 글로벌 자본, 문화, 세계인이 들며 나는 문명 치유의 대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벌써 15년 전 교육, 가족, 이민정책의 닫힌 문을 열라고 한국에 주문한 바 있다. 특히 신분과 차별 기제인 20세기형 한국 교육은 고려장의 대상이다.
둘째, 문화국가라면 세계인이 겪는 현실 파괴적 현상에 대해 대응책과 영원한 치유책을 동시에 구상하고 호소해야 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장기적 대안을 몽상(夢想)으로 내친다. 그것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비판적 통찰력은 비단 지식인만의 임무는 아니다. 미래 식견을 수렴하는 문화 공론장이 업종과 직종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작동해야 한다. 리바이어던(강성국가)에 족쇄를 채우는 주체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개인과 공동체마다 마음과 현실 공간에 창의적 공방(工房)을 가꿔야 한다. 공방은 연성권력을 생산하는 소중한 단위다.
문화국가, 정치권이 세계 무대로 나아간 K컬처의 작은 비밀이라도 체득해 국가 보수(補修)에 나선다면 한국의 미래와 후세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