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과 체코의 100년 인연
옛 소련 위성국가였던 체코와 우리가 관계를 맺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수교한 뒤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로 체코공화국이 수립됨에 따라 그해 재수교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미 100여 년 전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대첩의 숨은 공신은 체코군단의 무기였다. 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지배를 받던 체코는 러시아 전선에 동원됐으나 이내 투항하고는 총구를 거꾸로 겨눠 오스트리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붕괴로 독립을 얻은 체코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삯이 절실했고, 그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무기가 간절했던 사람들이 한국 독립군이었다. 독립군은 체코군단에서 5만 정 이상의 총을 샀고, 그때 동포들이 군자금으로 지원한 금가락지, 은비녀, 비단, 놋요강 등이 1920년대 체코 골동품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독립군이 구매한 무기에는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과 더불어 체코산도 있었다. 그 체코 무기를 만든 곳이 스코다다. 메르세데스벤츠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스코다는 1차 대전 때는 거대한 군수기업이기도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체코인들의 DNA는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최초로 로봇이란 말을 쓴 사람은 1900년대 초반 프란츠 카프카와 동시대의 체코 국민 작가인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을 통해서다.

한국에 한강이 있다면, 체코엔 블타바강이 있다. 유럽 10개국을 흐르는 다뉴브(도나우)강과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 강 중 하나인 엘베강의 체코 쪽 지류로, 독일어론 몰다우강이다. 안토닌 드보르자크와 함께 체코의 대표적 음악가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2악장 ‘블타바’는 체코의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한국과 체코 간 ‘팀 체코리아’ 협력이 부상하고 있다. 두 나라 정상은 원전 동맹과 병행해 미래차·배터리·로봇 등 혁신산업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해 가기로 했다. 우리에겐 유럽 원전 교두보, 체코에는 ‘블타바의 기적’을 향한 기대가 무르익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