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현재 세계 경제를 1920년대 대공황 당시와 비슷한 상황으로 진단했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라가드르 총재는 전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강연에서 “1920년대와 2020년대 사이에는 두 가지 구체적인 유사점이 눈에 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첫 번째 유사점으로 ‘글로벌 통합 무역 질서의 쇠퇴’를 꼽았다. 그는 “19세기 말 영원할 것 같던 개방적인 경제 질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끝났다”며 “경제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세계화의 급속한 해체가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현재로 눈길을 돌리며 “우리는 더 빈번한 공급 충격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한 환경에 맞춰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가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유사점으로는 ‘혁신 열풍’을 들었다. 1920년대 내연기관·컨베이어벨트식 조립 라인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듯 현재 인공지능(AI) 열풍이 핀테크 기업과 디지털 독점 현상을 낳고 있다고 라가르드 총재는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혁신 열풍이 대공황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비이성적인 과대망상이 주식시장 가치 폭등을 촉발’하면서다. 라가르드 총재는 “1920년대 기업 특허 인용 건수가 1% 늘어날 때마다 증시가 0.26% 상승했다”며 “그러나 중앙은행은 호황과 불황에 대처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부족했다”고 했다. 무역 분절은 각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을 외부 충격에 대응하는 데 쓰게 해 침체의 간접적 요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당시 교훈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전임자보다 이런 구조적 변화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빅테크의 시장 독점, AI의 급격한 발전 등은 새로운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