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국가는 한두 세대에 걸쳐 이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만은 예외다. 불과 두 세대, 60여 년 만에 모든 신흥국이 추앙하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적어도 신세대에 ‘태어나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코리안’임을 숨기지 않는다. 매년 수만 명이 유학을 가고, 3000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1980년대 사케와 스시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이제 김치, 비빔밥, 삼겹살, 김밥을 찾는다. BTS 뒤를 이은 청년 아티스트들이 일본 돔투어를 완판시키고 미국 대형 공연장을 휘젓는다.
다시 위대한 여정…이제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자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한국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강습과 강의가 줄을 잇는다. 국내의 ‘영어 공용화’보다 해외에서의 ‘한국어 세계화’가 더 현실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젊은이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목이 터져라 외친 ‘대~한민국’은 긍지와 자부심의 메아리가 돼 20년 이상 우리의 맥박을 고동치게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나 기대하던 극일은 이제 경제와 산업 분야를 물들이고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수출이 일본을 넘어설 수도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기적의 역사를 일군 대한민국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신생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 선진국으로, G10(주요 10개국)이 아니라 G5로 가는 것이다. 인구 위기와 구조개혁 부진, 잠재성장률 추락과 지정학적 불안 같은 도전적 위협과 과제가 상존한다. 하지만 과거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맨주먹으로 일어서 오늘날의 번영을 일궜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의 출발선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동원할 수 있는 자산도 풍부하다.

앞선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새로운 비전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라와 국민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잘 살아야 한다. 생산과 소득 수준을 확 끌어올려 국내총생산(GDP) 5000조원, 1인당 소득 7만달러 시대를 열어야 한다.

기존 성공 방정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국가의 운영 틀과 경제 체질, 국민 의식을 전면적으로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구 감소 재앙을 구조개혁과 새로운 성장 기회로 반전시키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민국가, 어떤 진영도 흔들 수 없는 공급망 강국, 인공지능(AI)·모빌리티·로봇·우주항공 분야의 선도국가, 문화·예술 분야의 세계적 허브, 인류 삶의 질과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국제사회의 리더가 새로운 지향점이다. 초일류 국가는 초일류 경제·문화·시민의 집합체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은 다음달 12일 창간 60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자’는 시리즈를 싣는다. 1964년 서울 태평로의 작고 소박한 창업이 어느새 한 갑자(甲子)를 돌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창달을 사시로 삼아 우리 국민이 절대 빈곤과 약소국의 숙명을 돌파해가는 장정을 매일 기록하고, 확인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긍지와 보람을 누렸다. 한결같이 변함없는 독자들의 성원과 격려 덕분이다. 우리나라가 안팎의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위대한 여정도 국민·독자와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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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위대한 여정…이제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자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시간은 한순간도 정지라는 것이 없다. 쉼 없이 흘러간다. 시작과 끝도 없다. 언제나 지금이 출발선이다. 1945년 8월 15일은 누구 말처럼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당일 정오,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조악한 음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일본어가 아니라 황족어 방송인 데다 잘 들리지도 않아 처음엔 무슨 소린지도 몰랐다고 한다. 몇몇 신문의 호외가 뿌려졌지만 경성(지금의 서울) 주민들은 일본의 항복이 갖는 의미를 금세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해방에 환호하며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은 이튿날이었다.

울분과 절망의 세월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꾼 소중한 출발이었다. 우리는 지난 80년간 새롭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았다. 더 나은 삶, 더 부강한 국가를 꿈꾸며 모든 국민이 각오와 의지를 다지며 열심히 살았다. 앞으로 20여 년이 지나 2045년이면 해방 100년이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광복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돌아봐야 할까. 새로운 꿈을 꿔야 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나라든 성장과 발전은 꿈의 크기에 비례한다. 도달하고자 하는 지평이 넓고 멀수록 더 크고 원대한 상상력을 가동해야 한다.
다시 위대한 여정…이제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자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1. 지금보다 두배 더 잘사는 나라

우선 국내총생산(GDP) 5000조원, 1인당 국민소득 7만달러의 길을 가보자. 국가 체질과 구조를 전면 쇄신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드시 시스템적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는 약 2400조원이었다. 현재 우리 인구구조와 경제적 역량이 2400조원짜리라는 얘기다. 이걸 두 배로 늘리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인적 자원, 생산력의 업그레이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 일하는 방식, 미래 비전 같은 소프트웨어를 5000조원짜리에 걸맞게 혁신하고 고도화해야 한다. 2400짜리 틀을 버리고 5000짜리 새로운 틀을 장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국민소득에 인구 감소 문제를 대입하면 또 다른 방식의 계산도 가능하다. 국민소득 7만달러 시대를 열려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동안 현재 5000만 명이 달려들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이런 방식의 상상력을 작동하면 소득은 인구의 결정적 함수가 아니다. 부가가치의 양과 질이 관건이다.

2. 인구 재앙을 새성장 기회로 바꾸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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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기민하고 진취적이며 위기에 강하다. 국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질적 생산성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달려 있다. 건설현장의 중장비 생산성은 인간의 몇십 배다. 사무공간의 컴퓨팅도 아날로그 노동의 몇십 배 효율을 낸다. 산업혁명 인터넷혁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폭발적 파급력과 생산성을 자랑하는 AI 모빌리티 로봇혁명이 시작됐다. 우리나라가 이런 신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양질의 고급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 고급 두뇌도 대거 유치할 수 있다.

양적 생산성 확보는 줄어드는 인구 가운데서도 여성과 고령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대거 편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근로시간 개편이나 정년 연장 같은 방식이 아니라 성별 연령별로 짜인 인력 수급의 기존 틀을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의사와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사회 제도가 그런 노동력을 사장시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근로 문화와 기업 인사·고용 제도를 전면 개혁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3.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최고의 국가

한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5.2%(2022년 기준)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R&D에 쏟아붓는 절대 금액도 120조원 선으로 세계 6위를 달리고 있다. 국가가 끌고, 기업이 미는 한국 특유의 R&D 시스템은 산업화의 첨병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96년 상용화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통신망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하지만 기존 시스템은 선진국 추격에 시계를 맞춘 패스트팔로어 전략이었다. 이제 그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중국이 이미 턱밑이고 인도 경제의 발호도 만만치 않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분야는 세계적 수준과 아직 격차가 크다. 특히 노벨과학상 수상자만 25명을 배출한 일본은 여전히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원천기술은 상용화와 달리 오랜 시일이 걸리고 상당한 지적 축적이 필요하다. 이미 ‘퍼스트 무버’의 대열에 선 한국엔 다른 지름길이 없다. 수십 년 뒤를 내다보고 장기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정부와 민간 간 유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성공 확률이 1~2%에 불과한 프로젝트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 특히 미래 먹거리인 우주와 양자, 핵융합 발전 등의 분야에선 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 R&D 생태계 전체를 ‘불가능에 도전하는 글로벌 실험실’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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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초일류 시민들의 국가

오늘날 세계는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돼 있다. 우리는 평생 한 국가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거주할 수 있고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한 직업적 능력과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소양과 품격을 갖추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세계시민 자질의 획득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세계화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에 온존하는 정치 사회적 규범의 타락과 시민의식 약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유는 누리면서 책임은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도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나라는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악플과 경망스러운 여론, 저속한 욕망이 넘실대는 물질우선주의를 척결해야 남을 배려하는 시민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

통각의 마비가 환자를 결정적 위험에 빠뜨리는 것처럼 도덕과 윤리의식의 실종은 사회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는 경제 전반의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고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움틀 공간을 제약한다. 무엇보다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이념 과잉과 포퓰리즘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국민적 각성을 이뤄야 한다.

5. 진영 간 격돌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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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전쟁의 기반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 경쟁이지만 실제 경쟁 무대는 경제-산업-기술-금융이다. 미국은 경제와 안보에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우방이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실용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중국은 한국을 필요로 한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 원자재 가격 상승, 높은 운송비와 인건비 등으로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더 높은 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한국 기업의 중국 내 투자가 필요하다. 중국이 외교적 마찰을 자제하는 동안 우리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 등 우방과의 안보경제협력을 더 강화해 실리를 확보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착안점이 있다. 미국이 공급망 재편을 밀어붙이면 중국도 공급망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이 공들이는 일대일로에 있는 나라들은 중국보다 가난하고 기술력도 떨어진다.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피해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역설적으로 미국 동맹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 최근 미국 정부를 향한 우리 정부 설득으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생산이 견제를 받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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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문화 예술 분야의 세계적 허브국가

음악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는 눈부실 정도로 비약적이고 가파르다. 기업의 세계화, 제품과 서비스의 고도화와 맞물려 한국의 문화·예술이 산업화를 이룩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다음 단계 진입을 위한 워밍업일 뿐이다. 세계 시장은 우리가 개척한 영역보다 훨씬 넓고 전통적 강자도 즐비하다.

국내 음악기업 전체의 매출이 미국 최대 기업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넷플릭스가 군림하는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의 격차는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 사람들의 의식주를 지배하는 ‘한류5.0’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K콘텐츠를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산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대중문화 플랫폼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문화·예술산업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장착하는 노력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콘텐츠·미디어업계의 거대 기업뿐 아니라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빅테크도 각자의 방식으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AI, 가상현실(VR),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이 융합적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세계화도 가속화해야 한다. 다양한 국가 출신의 창작자와 자본이 새로운 협력관계를 확립하는 모델을 만들고 우리 젊은이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산할 수 있는 세계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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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국제적 리더십

한국은 더 이상 동아시아의 주변국이 아니다. 경제력, 군사력, 문화적 역량에서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지키고 확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선진국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과는 긴밀하게 협력하되 독자적으로 국익을 추구해야 할 상황에선 달라진 위상과 국력에 맞게 우리만의 외교정책을 주도할 힘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도 적극 수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장차 명실상부한 주요 5개국(G5)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적어도 일본 정도의 국제사회 기여도를 이른 시일 내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국제통화기금(IMF) 지분율은 6.47%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지만 한국의 지분율은 1.80%로 전체 16위 수준이다. 일본은 세계은행(WB)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7.54%의 지분을 보유해 한국(1.66%)을 압도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선 일본이 미국과 함께 가장 많은 12.7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국제 원조에서도 한·일 간 격차는 크다. 지난해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196억달러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 이에 비해 한국 ODA는 일본의 15% 수준인 31억달러로 세계 14위에 머물러 있다.

조일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