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을 담은 '윤동주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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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쉬이 꺾이지 않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하늘만은 높아져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져 나뭇가지 위에 펼쳐진 하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들 것’도 같다 (윤동주, 소년, 1939). 서울에서 이 하늘과 가까운 곳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 청운동 어딘가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이 있다.
▶관련 칼럼(자하문을 돌아 길가 외딴 우물에 윤동주문학관이 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을 노래하는 시 구절에 친숙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국민 시'가 아니냐고 했다. 시의 의도와는 별개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단순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표현에 감상에 젖은 날도 있었다. 어려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이 아름다운 시인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무얼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다양한 공간들이 제안될 것이다. 지금의 윤동주 문학관은 과거에 사용되었던 수도 가압장을 그대로 활용하고 거기에 의미를 살려내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약 174㎡ 정도의 작은 문학관은 세 개의 공간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의 일생과 친필원고, 본가에서 건너온 우물목관 등의 전시를 통해 시인과 시인의 시를 전달하는 1전시관 (시인채), 수도 가압장의 물탱크를 그대로 활용하여 공간적 경험을 전달하는 2전시관 (열린 우물), 또 다른 물탱크를 보존하여 시인의 일생과 시를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3전시관 (닫힌 우물), 이렇게 세 공간이 전부이다.
2전시실은 물탱크의 천장을 없애 하늘로 열린 공간으로 조성하였고, 3전시실은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의 독방을 형상화하여 한 줄기 빛만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사방이 닫힌 공간에서 시인의 일생을 조망하게 한다. 물탱크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물이 차올랐던 흔적들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의 천장을 열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 시 ‘자화상’의 우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의도가 너무 직관적인 것이 아니냐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키보다 한참 높은 벽에 에워 쌓여 주위의 모든 경관과 소리에서 차단되고, 오로지 하늘과 그 하늘의 한 곁을 차지하는 나무만 보이는 경관 속에 들어가 있자면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라는 자화상의(1939) 한 구절이 하늘에 절로 펼쳐진다. 그리고 하늘과 가까운 곳에 이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럽게 느껴질 수 없다. 문학관이 되기 전 수도 가압장이었던 건물은 본래 1970년대에 청운아파트의 수도 공급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지대가 높아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청운아파트가 철거된 후 본래의 용도를 잃게 되었고, 방치된 상태로 오랜 시간을 견딘 후 2012년, 새로운 시대에 윤동주 문학관으로 새로운 역할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곳의 시간이 그대로 보존된 흔적, 물탱크였던 벽에 자글자글하게 남아있는 색 바랜 흔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이런 시의 구절이 벽 위로 차올라온다.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을 했던 시인은 시상을 다듬기 위해 자주 산책 삼아 인왕산을 오르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관을 시작점으로 청운공원으로 이어지는 이 길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시인이 살았던 어려운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지기도 하는 곳이다. 시인을 기념하는 작은 공간에서 나와 이 경관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으니 발밑에 또 이런 시가 지나가는 것이다.
▶관련 칼럼(자하문을 돌아 길가 외딴 우물에 윤동주문학관이 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을 노래하는 시 구절에 친숙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국민 시'가 아니냐고 했다. 시의 의도와는 별개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단순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표현에 감상에 젖은 날도 있었다. 어려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이 아름다운 시인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무얼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다양한 공간들이 제안될 것이다. 지금의 윤동주 문학관은 과거에 사용되었던 수도 가압장을 그대로 활용하고 거기에 의미를 살려내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약 174㎡ 정도의 작은 문학관은 세 개의 공간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의 일생과 친필원고, 본가에서 건너온 우물목관 등의 전시를 통해 시인과 시인의 시를 전달하는 1전시관 (시인채), 수도 가압장의 물탱크를 그대로 활용하여 공간적 경험을 전달하는 2전시관 (열린 우물), 또 다른 물탱크를 보존하여 시인의 일생과 시를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3전시관 (닫힌 우물), 이렇게 세 공간이 전부이다.
2전시실은 물탱크의 천장을 없애 하늘로 열린 공간으로 조성하였고, 3전시실은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의 독방을 형상화하여 한 줄기 빛만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사방이 닫힌 공간에서 시인의 일생을 조망하게 한다. 물탱크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물이 차올랐던 흔적들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의 천장을 열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 시 ‘자화상’의 우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의도가 너무 직관적인 것이 아니냐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키보다 한참 높은 벽에 에워 쌓여 주위의 모든 경관과 소리에서 차단되고, 오로지 하늘과 그 하늘의 한 곁을 차지하는 나무만 보이는 경관 속에 들어가 있자면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라는 자화상의(1939) 한 구절이 하늘에 절로 펼쳐진다. 그리고 하늘과 가까운 곳에 이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럽게 느껴질 수 없다. 문학관이 되기 전 수도 가압장이었던 건물은 본래 1970년대에 청운아파트의 수도 공급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지대가 높아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청운아파트가 철거된 후 본래의 용도를 잃게 되었고, 방치된 상태로 오랜 시간을 견딘 후 2012년, 새로운 시대에 윤동주 문학관으로 새로운 역할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곳의 시간이 그대로 보존된 흔적, 물탱크였던 벽에 자글자글하게 남아있는 색 바랜 흔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이런 시의 구절이 벽 위로 차올라온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1942.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을 했던 시인은 시상을 다듬기 위해 자주 산책 삼아 인왕산을 오르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관을 시작점으로 청운공원으로 이어지는 이 길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시인이 살았던 어려운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지기도 하는 곳이다. 시인을 기념하는 작은 공간에서 나와 이 경관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으니 발밑에 또 이런 시가 지나가는 것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윤동주 <새로운 길>, 1941.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