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세계’에 갇혔던 김민희의 자유로워진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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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수유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수유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엇비슷하다. 주제도 메시지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얘기들, 늘 술자리에서 토로되는 삶의 애환의 얘기들, 그리고 찌질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디테일에서 변화를 주곤 하는 것이 그의 영화였다.
최근 개봉된 <수유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김민희)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 ‘시언’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급하게 부탁한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이 있어 연출을 맡는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외삼촌은 전임이 모시다시피 하는 텍스타일학과 '정 교수'(조윤희)와 가까워지고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촌극 연습을 하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자꾸 ‘작업’을 하던 남자 연출가는 쫓겨났지만 다시 학교를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면서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전임과 시언은 여기에 개입하며 그를 가로막는다. 홍상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모두 다 대단하지 않은 그냥 흘러가는 얘기들이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내용도 아무것도 없다.
홍상수는 자신의 작품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음을 강조하는 감독이다. “당신의 의도가 너무 명확할수록 모든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반면에 당신이 어떠한 의도나 목표나 메시지나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아마 당신이 혼란스럽고 길을 잃었으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괜찮다.” (<씨네 21> 인터뷰)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감독에게 아무런 의도가 없으니 무슨 감동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그런데도 홍상수의 영화들이 일종의 중독증을 갖게 만드는 것은 영화 속 주로 술자리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얘기에 삶의 고단함, 꿈, 사랑, 좌절 같은 우리 삶의 단편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음증이라고 할까. 저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하면서, 저런 애환을 갖고,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살고 있구나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어디가 종착지인지 모른채 그냥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드디어 촌극 공연을 했는데 반응들이 좋지 못했다. 연극을 보던 총장과 일부 관객들은 야유까지 보냈다. 연출가 시언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은 촌극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시언과 출연 여학생들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촌극에 만족했다며 스스로들 위안을 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술자리에서 인생의 보따리를 풀곤 한다.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한 사람씩 말해보자고 시언이 제안을 하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입을 연다. “솔직하게 살고 싶다”, “사람임을 잊지 않고 싶다”, “사랑이 가득 찬 삶을 살고 싶다”,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싶다.” 학생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말하는데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울먹인다. 그렇게 너무 간절하면 스스로를 울리게 되는 법이다.
<수유천>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자유로워진 김민희의 연기이다. 그동안 홍상수의 작품 속에서 김민희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그를 정물처럼 가둬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런데 <수유천>에 대학 강사 전임으로 나온 김민희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을 관찰하는 위치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수유천>은 세월을 마주하는 배우 김민희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녀도 이제 40대, 화려하지 않은 단벌 차림에 머리에서는 새치마저 눈에 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연기가 달라졌다.
김민희는 <수유천>으로 제77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로카르노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김민희에 대해 "섬세함과 인내, 절제를 위한 대담함이 필요하다. 영화 '수유천'에서 이 여배우는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의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내 심사위원단 모두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최우수 연기상을 김민희 씨에게 드린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김민희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선을 드러낸다. 전임은 외삼촌 시언과 정 교수 사이를 계속 의심한다. 정 교수의 집 2층에서 그날 함께 잤는지를 따지듯이 묻고 그러지 않았다는 대답을 확인하곤 한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술자리에서 시언은 자신이 이혼했다는 얘기를 전임에게 해준다. 법원에서도 10년간 별거를 했더니 결국에는 이혼을 허락해 주더라는 얘기와 함께. 홍상수는 아내를 상대로 법원에 이혼 청구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되어 법적으로는 김민희와 ‘불륜’ 상태인 셈이다. 작품마다 자신의 얘기를 담곤 했던 홍상수는 이번에도 시언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그런 전임에게 수유천은 중요한 코드이다. 시언 그리고 정 교수와 함께 셋이 계곡의 음식점에서 술자리를 갖다가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면 수유천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전임은 계곡 위로 사라져버린다. 남은 두 사람이 사라진 전임을 찾아 나서자 그때 전임은 환하게 웃으면서 계곡에서 내려온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 화면은 멈추고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조금 전 술자리에서 눈에서 피가 나서 붕대를 감았던 때의 얘기를 하면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던 전임이었다. 그녀는 수유천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아니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째서 환하게 웃으며 내려온 것일까. 굳이 정답을 들으려 할 일은 아니다. 감독은 이미 아무런 의도 없음을 밝히지 않았던가. ‘불륜’의 딱지가 붙은 홍상수-김민희의 영화는 굳이 보지 않겠다고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나치를 찬양했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매혹적인 선율에 우리는 빠져있지 않은가. 화가 카라바조도 사생활에서는 폭행을 일삼아 감옥에 7번이나 갔고 살인까지 저질렀던 난폭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예술적 성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도 도덕도 일시적으로는 예술을 누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정치도 도덕도 예술을 이기지는 못한다. 작가의 삶이 도적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작품이 홀대당한 일은 예술사에 찾아보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 부조리함에 대해 항변할지 모르지만 예술의 힘은 그만큼 크다.
이제 연기에 물이 오른 김민희만 변한 것이 아니라 홍상수도 변한 것이 하나 있다. 그의 영화에서 인생 얘기의 주 무대인 술자리에 올라오는 술이 소주에서 이제는 막걸리로 바뀌었다. “이제 내가 많이 늙은 탓에… 소주는 너무 독해서 막걸리를 마신다”는 것이 홍상수의 말이다. 그도 세월을 피해 갈 수 없음이다. 세월은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뒤로 끌고 가기도 한다. 두 사람의 영화 인생은 어떤 것에 해당될까.
유창선 문화평론가
최근 개봉된 <수유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김민희)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 ‘시언’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급하게 부탁한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이 있어 연출을 맡는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외삼촌은 전임이 모시다시피 하는 텍스타일학과 '정 교수'(조윤희)와 가까워지고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촌극 연습을 하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자꾸 ‘작업’을 하던 남자 연출가는 쫓겨났지만 다시 학교를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면서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전임과 시언은 여기에 개입하며 그를 가로막는다. 홍상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모두 다 대단하지 않은 그냥 흘러가는 얘기들이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내용도 아무것도 없다.
홍상수는 자신의 작품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음을 강조하는 감독이다. “당신의 의도가 너무 명확할수록 모든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반면에 당신이 어떠한 의도나 목표나 메시지나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아마 당신이 혼란스럽고 길을 잃었으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괜찮다.” (<씨네 21> 인터뷰)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감독에게 아무런 의도가 없으니 무슨 감동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그런데도 홍상수의 영화들이 일종의 중독증을 갖게 만드는 것은 영화 속 주로 술자리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얘기에 삶의 고단함, 꿈, 사랑, 좌절 같은 우리 삶의 단편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음증이라고 할까. 저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하면서, 저런 애환을 갖고,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살고 있구나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어디가 종착지인지 모른채 그냥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드디어 촌극 공연을 했는데 반응들이 좋지 못했다. 연극을 보던 총장과 일부 관객들은 야유까지 보냈다. 연출가 시언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은 촌극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시언과 출연 여학생들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촌극에 만족했다며 스스로들 위안을 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술자리에서 인생의 보따리를 풀곤 한다.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한 사람씩 말해보자고 시언이 제안을 하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입을 연다. “솔직하게 살고 싶다”, “사람임을 잊지 않고 싶다”, “사랑이 가득 찬 삶을 살고 싶다”,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싶다.” 학생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말하는데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울먹인다. 그렇게 너무 간절하면 스스로를 울리게 되는 법이다.
<수유천>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자유로워진 김민희의 연기이다. 그동안 홍상수의 작품 속에서 김민희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그를 정물처럼 가둬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런데 <수유천>에 대학 강사 전임으로 나온 김민희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을 관찰하는 위치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수유천>은 세월을 마주하는 배우 김민희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녀도 이제 40대, 화려하지 않은 단벌 차림에 머리에서는 새치마저 눈에 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연기가 달라졌다.
김민희는 <수유천>으로 제77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로카르노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김민희에 대해 "섬세함과 인내, 절제를 위한 대담함이 필요하다. 영화 '수유천'에서 이 여배우는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의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내 심사위원단 모두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최우수 연기상을 김민희 씨에게 드린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김민희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선을 드러낸다. 전임은 외삼촌 시언과 정 교수 사이를 계속 의심한다. 정 교수의 집 2층에서 그날 함께 잤는지를 따지듯이 묻고 그러지 않았다는 대답을 확인하곤 한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술자리에서 시언은 자신이 이혼했다는 얘기를 전임에게 해준다. 법원에서도 10년간 별거를 했더니 결국에는 이혼을 허락해 주더라는 얘기와 함께. 홍상수는 아내를 상대로 법원에 이혼 청구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되어 법적으로는 김민희와 ‘불륜’ 상태인 셈이다. 작품마다 자신의 얘기를 담곤 했던 홍상수는 이번에도 시언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그런 전임에게 수유천은 중요한 코드이다. 시언 그리고 정 교수와 함께 셋이 계곡의 음식점에서 술자리를 갖다가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면 수유천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전임은 계곡 위로 사라져버린다. 남은 두 사람이 사라진 전임을 찾아 나서자 그때 전임은 환하게 웃으면서 계곡에서 내려온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 화면은 멈추고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조금 전 술자리에서 눈에서 피가 나서 붕대를 감았던 때의 얘기를 하면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던 전임이었다. 그녀는 수유천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아니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째서 환하게 웃으며 내려온 것일까. 굳이 정답을 들으려 할 일은 아니다. 감독은 이미 아무런 의도 없음을 밝히지 않았던가. ‘불륜’의 딱지가 붙은 홍상수-김민희의 영화는 굳이 보지 않겠다고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나치를 찬양했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매혹적인 선율에 우리는 빠져있지 않은가. 화가 카라바조도 사생활에서는 폭행을 일삼아 감옥에 7번이나 갔고 살인까지 저질렀던 난폭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예술적 성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도 도덕도 일시적으로는 예술을 누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정치도 도덕도 예술을 이기지는 못한다. 작가의 삶이 도적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작품이 홀대당한 일은 예술사에 찾아보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 부조리함에 대해 항변할지 모르지만 예술의 힘은 그만큼 크다.
이제 연기에 물이 오른 김민희만 변한 것이 아니라 홍상수도 변한 것이 하나 있다. 그의 영화에서 인생 얘기의 주 무대인 술자리에 올라오는 술이 소주에서 이제는 막걸리로 바뀌었다. “이제 내가 많이 늙은 탓에… 소주는 너무 독해서 막걸리를 마신다”는 것이 홍상수의 말이다. 그도 세월을 피해 갈 수 없음이다. 세월은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뒤로 끌고 가기도 한다. 두 사람의 영화 인생은 어떤 것에 해당될까.
유창선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