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원로 예젠잉 장녀 96세로 별세…"문화대혁명 때 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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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국 원로인 예젠잉(葉劍英·1897∼1986)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장녀인 예추메이(葉楚梅) 전 기계공업부 부국장이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3일 홍콩 성도일보에 따르면 예추메이 전 부국장은 지난 18일 베이징에서 고령과 지병 등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1928년 홍콩에서 예젠잉 전 위원장의 장녀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늘 떨어져 지내다가 17세 때 옌안(延安)에서 재회한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만주지역으로 건너가 동북민주연군의 병사가 된다.
이후 1948년 중국 공산당이 선발한 혁명지도부 자녀 21명에 포함돼 소련 유학길에 오른 뒤 귀국해 기계공업부 부국장 등 공직을 수행했다.
당시 고인과 부친이 주고받은 애틋한 편지는 대중에게 공개돼 큰 감동을 줬다.
고인은 문화대혁명(1966∼1976) 당시, 나중에 국무원 부총리까지 오른 남편인 저우자화(鄒家華)와 함께 수차례 고문을 당하고 감금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예젠잉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개국 10대 원수이자 공산당의 대장정과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을 주도한 인물로, 1970년대 국방부장(장관), 정치국 상무위원,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을 지냈다.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개혁개방을 지지하고 시진핑 주석 부친인 시중쉰(習仲勳·1913∼2002) 전 부총리 등 개혁파 지도자들을 지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 매체들은 앞서 고인에 대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로 선두에 선 아버지의 혁명 정신을 물려받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연합뉴스
23일 홍콩 성도일보에 따르면 예추메이 전 부국장은 지난 18일 베이징에서 고령과 지병 등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1928년 홍콩에서 예젠잉 전 위원장의 장녀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늘 떨어져 지내다가 17세 때 옌안(延安)에서 재회한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만주지역으로 건너가 동북민주연군의 병사가 된다.
이후 1948년 중국 공산당이 선발한 혁명지도부 자녀 21명에 포함돼 소련 유학길에 오른 뒤 귀국해 기계공업부 부국장 등 공직을 수행했다.
당시 고인과 부친이 주고받은 애틋한 편지는 대중에게 공개돼 큰 감동을 줬다.
고인은 문화대혁명(1966∼1976) 당시, 나중에 국무원 부총리까지 오른 남편인 저우자화(鄒家華)와 함께 수차례 고문을 당하고 감금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예젠잉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개국 10대 원수이자 공산당의 대장정과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을 주도한 인물로, 1970년대 국방부장(장관), 정치국 상무위원,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을 지냈다.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개혁개방을 지지하고 시진핑 주석 부친인 시중쉰(習仲勳·1913∼2002) 전 부총리 등 개혁파 지도자들을 지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 매체들은 앞서 고인에 대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로 선두에 선 아버지의 혁명 정신을 물려받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