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인텔과 보잉이 약속이나 한 듯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올 들어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주가는 반토막 났다. 두 기업은 사업 재편이나 구조조정으로 탈출구를 모색하지만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단기간 내 치유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반도체 왕국’과 ‘하늘의 제왕’으로 각각 군림하던 두 기업의 동반 몰락은 ‘초일류 기업도 졸면 죽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인텔은 1970년대부터 40년 이상 PC 중앙처리장치(CPU) 하나로 먹고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이른바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전략으로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모바일 기술 흐름을 놓친 데 이어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한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오판의 중심엔 재무와 마케팅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이 있었다. 이들이 경영을 맡은 2005년부터 인텔은 기술 혁신보다 수익성 개선에 목을 맸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보다 원가 절감을 통한 이익 늘리기에 바빴다. 2021년 뒤늦게 기술 전문가인 팻 겔싱어를 CEO로 불러들여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했지만 내부 역량 부족 탓에 손실만 커져 ‘인텔이 퀄컴에 매각될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위기가 심화됐다.

창사 108년을 맞은 보잉의 현주소도 인텔과 판박이다. 한때 개발 인력 4만 명을 보유한 보잉은 1996년 경쟁사 맥도널 더글러스를 인수한 뒤 이익만 좇는 기업으로 바뀌었다. 맥도널 더글러스 CEO 출신인 해리 스톤사이퍼는 보잉에 합류해 고참 엔지니어 등 직원 4만 명을 해고하고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아웃소싱을 대폭 늘렸다. 수익성 추구로 바뀐 보잉의 기업문화는 품질 문제를 야기하며 잇따른 737맥스 추락사고의 원인이 됐다.

기업이 실적을 올려 주주에게 보상을 늘리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재무적 지표에만 매몰돼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등한시하면 수익도, 주가 부양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위적 밸류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주주에게도 이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