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국민연금에 근로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연금에 100인 초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부여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퇴직연금의 저변을 확대하고 수익률을 높인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국민 노후보장 체계를 전면적으로 흔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현행 연금제도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3층 구조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에 머물러 있는 만큼 퇴직연금 기능을 강화해 국민 노후 안정을 지원하는 건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적연금, 퇴직연금은 사적연금으로 엄연히 구분된 영역이다. 도입 목적부터 재원 조달, 운용 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까지 진출해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 두 영역 간 경계가 무뎌진다. 국민연금 고갈을 늦추는 데 퇴직연금이 활용될 수 있는 데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까먹었을 때 뒷감당도 어렵다.

국민연금의 ‘슈퍼 공룡화’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1000조원을 넘었고, 퇴직연금 적립액도 400조원에 이른다. 두 연금의 합산 적립액은 2040년 3500조원으로 불어난다. 비대해진 국민연금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분리 운용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퇴직연금 시장 진출은 거대한 부작용을 키우게 된다. 조만간 국민연금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 대규모 자산을 팔아야 할 때 퇴직연금 편입 자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연금이 많아질수록 주주권 행사를 통해 민간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연금사회주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것 역시 무시 못 할 문제다.

최근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이 2.07%에 불과해 물가상승률조차 못 쫓아가는 퇴직연금의 쥐꼬리 수익률은 개선돼야 한다. 수익률 부진의 주원인은 지배구조가 아니라 적립금의 90%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탓이다. 원리금 보장상품 규제 등을 풀어 해결해야 할 문제지, 공적기관의 개입으로 잡을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허물려고 들다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