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만난 후배가 “언니는 호가 사랑이잖아. 사랑 최지인 선생”이라며 놀렸다. 사랑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말부터 떠오르는데, 실은 살면서 쉽게 멈추기가 어려운 것이라 소중하고 기쁘면서도 동시에 지겹고 거북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관계가 시작되면 맘속에 따끈한 열매가 자라는데, ‘타인은 지옥’이라는 오래된 명제처럼 저마다의 모나고 거친 면도 주고받기 마련이라서, 생각처럼 완벽하게 붉고 둥근 과실이 될 수 없게 조금씩 상처 나고 곪아가며 익어가는 마음이 된다.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예소연의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은 출간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책이다. '우리 철봉 하자'는 도치된 제목 <철봉하자 우리>로 알려진 목충헌 감독의 영화 원작으로도 일찌감치 유명해진 소설이기도 하고, 작가가 황금드래곤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여러 차례 호명되어 이미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는 총 열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랑, 이전 세대와의 사랑,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사랑을 다양하게 엮어 보여준다.
예소연 소설집 『사랑과 결함』(문학동네, 2024)
예소연 소설집 『사랑과 결함』(문학동네, 2024)
사랑을 증명할 길은 달리 없었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 사랑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데. 더군다나 나는 태수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태수씨가 아프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 개와 혁명', p. 235)

기대는 배반되지 않았다. 이 책을 절반쯤도 읽기 전에 한 생각이다. 이 책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적시한다. 선 넘고 침범받으며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끝내 나를 위해 눈 밑에 물파스를 발라보는 친구를 미워할 수 있을까('우리 철봉 하자').

나를 흠뻑 사랑해주었지만 나의 엄마를 지독하게 괴롭힌 고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사랑과 결함'). 그리고 이렇게 나를 다치게 하다가도, 밀어내면 외로운 이 모든 사랑을 멈추거나 혹은 계속할 수 있을까.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뜬금없지만 특별히 가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찬바람이 불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약해지는 모든 사람에게. 쓰고 떫은 기억으로 남은 사랑의 민낯을, 그리고 그 결함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주는 소설이라고.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