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림자' 드리운 일본의 장기이식
일본은 장기이식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올 1월 장기이식 분야 선두 병원인 도쿄대병원, 교토대병원 그리고 도호쿠대병원에서만 2023년 한 해 동안 62건의 장기이식수술을 거부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일본이식학회에서는 3개 대학에 사상 최초로 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각 대학에서 중환자실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고 장기이식 외과의와 마취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한 탓에 수많은 장기이식이 거부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도쿄대 등에서는 다른 중증 환자의 수술과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날, 세 번째 이식수술은 진행할 수 없다는 내규까지 운영한 것도 드러났다.

일본은 우리보다 3년 앞선 1997년 ‘일본장기이식법’을 제정했다. 서면에 의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하고, 가족에 의한 장기 제공 동의가 필수요건이었으므로 이런 요건을 충족시킨 장기 제공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9년 장기이식법이 개정됐다. 본인의 의사가 분명하지 않더라도 가족이 동의하면 장기 기증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2023년에는 149명의 뇌사 기증자가 나왔다. 장기이식법 시행 후 최고의 기증 기록이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표적 이식수술 기관에서 수술이 거부돼 기증자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식 건수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다행히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지금까지는 장기이식수술에 대한 병원의 분위기가 비교적 호의적이다. 장기이식이 아니면 살릴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고생하는 이식수술 의사들과 수술 진행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코디네이터에 대한 존경과 연민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일어나는 장면이 한국에서도 머지않은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실제로 하루에 시행할 수 있는 이식 수술 건수를 제한하는 병원이 생길까 염려된다.

필수 의료에 대한 정의조차 확립되지 않은 요즈음, 장기이식이 필수 의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증 장기가 없으면 환자를 살릴 수 없다. 또 가족 간 생체 기증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뇌사 장기이식술이 대체 불가 의료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처한 딱한 상황이 머지않은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힘을 모아 여러 가지 제도 보완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