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대표 "팬이 직접 아이돌 운영에 동참…K팝 이적시장 만드는 게 목표" [긱스]
‘세계 최초 탈중앙형 아이돌.’ 지난해 데뷔한 24인조 걸그룹 트리플에스를 부르는 말이다. 이 그룹의 활동 시스템은 독특하다. 팬들이 유닛 멤버 결정부터 타이틀곡, 앨범 재킷, 뮤비 촬영 장소 등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멤버별 포토카드를 구매해 투표권으로 교환, 전용 플랫폼에서 원하는 방향에 투표하면 된다. 조작 논란이 없도록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정병기 모드하우스 대표(사진)는 JYP엔터테인먼트, 울림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원더걸스, 미스에이, 2PM, 이달의소녀 등을 제작한 인물이다.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 아래 2021년 모드하우스를 창업했다.

중간 성적은 좋다. 팬 참여 플랫폼 ‘코스모’ 가입자가 18만 명. 이 중 33%가 투표가 열릴 때마다 참여한다. 투표권과 연결되는 대체불가능토큰(NFT) 누적 발행량만 350만 장이다. 팬들의 후원에 힘입어 트리플에스는 최근 음악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정 대표는 “K팝 그룹의 새로운 운영 문법을 팬들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리플에스 운영의 핵심은 멤버들로 다양한 유닛을 꾸리고 활동 방향과 콘셉트 결정권을 팬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트리플에스 첫 타이틀 곡 결정에 6만 표, 팬덤명을 정하는 데 9만 표가 몰렸다. 의견을 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 이들이다. 그는 “아이돌의 성장에 기여하길 원하는 팬들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전까지 아이돌 매출은 앨범, 음원 판매, 콘서트 등 방법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 모드하우스가 파는 NFT는 기존 시장에 없던 새로운 매출원이다. 정 대표는 “앨범과 콘서트는 나중에 나오는 매출이라면 포토카드 NFT는 활동 전에도 올릴 수 있는 매출”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유닛 활동 투표를 받으면서 앨범 제작비 일부를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크게 줄어든다. 아티스트도 빠르게 정산받을 수 있다.

팬덤 수요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참여율이 높은 투표일수록 해당 활동에 대한 관심과 구매력이 크다는 뜻이라서다. 모드하우스는 또 다른 걸그룹 아르테미스의 해외 투어를 준비할 때도 투표 결과를 참고했다. 투어를 돌 때 각 지역 투표율을 보고 티켓 판매량을 예상해 공연장 크기를 결정했다.

정 대표는 코스모를 통해 K팝 내 이적 시장을 조성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은 보통 실패 낙인이 찍혀 재도전 기회를 못 얻는다. 그는 “못 뜬 그룹에도 좋은 인재가 많은데 이들을 놓치는 건 K팝산업의 큰 손실이다. 축구 선수처럼 이적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코스모에선 NFT 판매량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만큼 인재의 몸값 측정도 쉽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모드하우스는 올해 소속 그룹들의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일본에 코스모 플랫폼 자체를 수출할 계획도 있다. 정 대표는 “K팝산업을 완전히 바꿨다고 팬들로부터 평가받는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