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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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사법부가 행정부에 요구한 예산이 연평균 7% 넘게 삭감됐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법원의 예산 편성 자율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야 재판 지연 등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2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행정학회는 최근 ‘사법부의 독립성·자율성 보장을 위한 예산안 편성 절차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법원행정처에 제출했다. 지난해 10월 법원행정처의 입찰공고에 따라 진행된 연구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헌법은 예산안 편성권을 정부에만 부여한다. 이에 따라 법원도 일반 중앙부처처럼 정부가 만든 ‘예산안 편성 지침’에 맞춰 만든 예산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내고 있다. 기재부는 사법부를 포함해 국가 전반의 예산을 조정한 다음 국회에 제출한다. 보고서는 이런 예산 편성 시스템이 ‘삼권분립’의 헌법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사법부가 요구한 예산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연평균 7.4%씩 삭감했다. 지난해 법원행정처는 정부에 총 2조2988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이중 2172억원을 깎았다. 삭감률이 9.4%에 달했다. 다른 정부 예산과 비교해도 법원 예산은 보수적으로 책정됐다. 2018~2022년 국가 전체 예산은 연평균 7.2%씩 늘었지만, 같은 기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예산 증가율은 각각 4.1%, 2.3%에 그쳤다.

보고서는 정부가 사법부 예산을 손보면서 재판 지연 등 사회적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공판(제1심) 사건별 평균 처리 기간은 2014년 3.9개월에서 지난해 6.0개월로 50% 넘게 길어졌다.

행정학회는 보고서에서 “사법부의 예산이 행정부에 의해 결정돼 삼권분립과 법원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헌법이나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행정부가 법원 등 독립기관의 세출예산 요구액을 감액할 때는 해당 기관장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거나, 정책적으로는 예산 편성 과정에 국민 참여를 늘려 사법부가 만든 예산안을 정부가 수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예산안 편성권 독립은 반세기가 넘은 사법부의 ‘숙원’이다. 1962년 헌법개정을 앞두고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공법학회는 ”‘사법부의 예산편성에 대해 행정부에서 변경을 가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자“는 건의서를 내기도 했다. 작년 7월엔 안철상 당시 대법관이 직접 나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예산안 편성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행정부가 국가 전반 예산을 통합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부만 예산안을 독립적으로 편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특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