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전기차업체인 중국 비야디(BYD·올 상반기 점유율 21%)는 배터리의 80~90%를 내부에서 조달한다. 전기차 값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내재화해 가격을 대폭 떨어뜨리지 못하면 전통의 자동차 강호들을 꺾을 수 없다는 판단에 일찌감치 개발에 들어갔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배터리와 전기차를 한 묶음으로 설계·생산하자 각종 비용이 줄어들 뿐 아니라 각각의 차에 맞게 배터리를 최적화하는 노하우도 손에 넣게 된 것. 배터리 소재를 각각 포장해 팩에 넣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모든 소재를 한 번에 포장하는 ‘셀투팩’(CTP)과 차체와 배터리팩을 일체화하는 ‘셀투섀시’(CTC) 등 신기술이 BYD에서 나온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BYD는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전기차 생산비용의 20~30%를 절감했다”며 “배터리 내재화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완성차 업체라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자체기술 확보 나선 현대차…"전기차 경쟁력 레벨업"

현대차, 소재 기업과 접촉 시작

현대자동차가 배터리 내재화에 들어간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2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2027년께 경기 안성 등지에 세울 배터리 연구개발(R&D) 단지에 연 1~2GWh 규모의 제조설비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SK온 등 배터리셀 업체에 현대차가 설계한 ‘맞춤형 배터리’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형태로 생산만 맡기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업계에선 현대차가 이미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의 R&D 역량과 공정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기 의왕연구소와 마북연구소를 중심으로 10년 넘게 배터리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서울대와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업체들도 현대차의 배터리 기술력에 크게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배터리 개발을 본격화하면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한 단계 점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터리 밸류체인은 원자재(리튬·니켈 등)→배터리 소재(양극재·음극재 등)→배터리 셀→완성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여기에서 배터리 셀 기술을 내재화하면 전기차와 통합 개발할 수 있는 만큼 생산효율이 대폭 높아진다. 현대차는 배터리 셀 내재화뿐 아니라 원자재 도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 광산기업과 수산화리튬 공급 계약도 맺었다.

전기차와 배터리 성능 개선 효과 역시 얻을 수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를 동시에 설계·개발하면 배터리 용량과 충전 속도, 안전성을 각각의 차량 특성에 맞게 미세 조정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배터리를 전기차 차체와 통합하는 셀투비히클(CTV) 기술을 개발 중인데, 전 과정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폐배터리를 수거해 새 배터리로 만드는 재활용 사업을 벌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배터리업계 판도 변화

배터리셀 기업들은 현대차의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대차가 배터리 관련 기술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납품단가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현재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전기차에는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의 파우치형 배터리(NCM 또는 NCMA)가 주로 장착된다.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제품은 코나 EV, 니로 EV, 레이 EV 등 저가 전기차에 적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면 언젠가 직접 생산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며 “미국 테슬라처럼 일부 물량을 자체 생산하면서, 이를 지렛대 삼아 배터리 셀 업체의 납품단가를 낮추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전기차 핵심 부품인 전력 반도체도 자체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의 권위 있는 연구기관과 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 반도체 자체 개발에 성공하면 규격화된 범용 반도체를 쓰는 경쟁사들과 차별화된 전기차 모델을 개발·판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형규/김우섭/성상훈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