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약 강국의 조건
렉라자의 여운이 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제약·바이오 모임의 단골 메뉴다. 렉라자에 얽힌 온갖 이야기는 끝이 없을 정도다. FDA 허가 1호 국산 항암제라는 타이틀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K바이오엔 희망 그 자체이기도 하다.

렉라자의 원개발사는 국내 바이오텍인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스코다. 전임상 직전 단계에서 2015년 유한양행에 넘겼고, 유한양행은 3년 뒤인 2018년 다시 얀센에 기술 수출했다. 그리고 7년 만에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 진입했다. 게다가 세계 주요 암학회에서 주연 자리를 꿰차고 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항암제가 유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 100년 제약 역사에서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는 건 유일무이한 일이다.

렉라자가 밝힌 '희망'

렉라자는 한국식 신약 성공 방정식을 썼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자금과 연구개발 경험이 떨어지는 바이오텍이 의약품 개발 경험이 풍부한 제약사와 손잡고 가치를 업그레이드한 뒤 글로벌 임상과 마케팅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제약사를 파트너로 끌어들인 전략이 그렇다.

렉라자의 성공에도 국내 바이오업계의 형편은 여전히 어렵다. 대다수 바이오텍은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파산에 내몰린 곳도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제2, 제3의 렉라자가 계속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약은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산업이다. 신약 성공 확률은 2~3%에 불과하고 개발 자금도 신약 하나에 수조원 넘게 들어간다. 하지만 글로벌 블록버스터 대열에 끼게 되면 신약 하나로 연간 수조원을 벌 수 있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 다른 제조 업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패 용인하는 환경 마련을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고도 성공할 수 있는 게 신약 개발이다. 주요 성분 오류 때문에 국내에서 허가가 취소됐지만 미국 FDA의 안전성 검토 끝에 임상시험이 재개된 코오롱 인보사가 대표적이다. 최근 임상 3상 투약을 마쳤고, 안전성 확인 후 허가 신청을 낼 계획이다. 한발 더 나아가 골관절염뿐 아니라 고관절, 척추 등의 치료제로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 K바이오에 거는 기대는 더 크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치료제 엑스코프리,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 유한양행 렉라자 등은 연 매출 1조원을 넘는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역사적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런 희망을 이어가는 일이다. 우선 바이오산업의 혁신성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소액이면서 단기 지원 중심인 정부 연구개발 과제부터 실적을 내지 못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되는 상장제도에 이르기까지 기존 정책과 제도는 바이오산업에 걸맞지 않다. 법차손이 대표적인 규제다. 어렵게 개발한 혁신 신약조차 약가를 깎는 건강보험체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건강보험 적자를 줄이려다 신약 개발이라는 혁신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제2의 렉라자가 나오도록 하는 데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