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외국인이 이달 들어 국내 증시에서 '셀(sell) 코리아'에 나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7조원 가까이 순매도한 와중에도 바이오와 2차전지주는 적극 담고 나섰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전날(24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총 6조6404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이달 13거래일 중 3거래일을 제외하곤 전부 순매도 기조를 보였다. 같은 기간 개인과 기관이 각각 5조5888억원, 7263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외국인은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팔자'에 나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식을 각각 6조5548억원, 833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두 종목은 나란히 외국인의 순매도 상위 1·2위를 기록했다. 외국인은 지난 3일부터 12거래일 연속 삼성전자 주식 순매도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배경엔 업황과 실적 부진에 대한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제외한 레거시(범용)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상승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PC·모바일 제품 중심의 정보기술(IT) 수요가 시장의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가 지난 15일 글로벌 반도체 업황 부진을 전망한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투심이 더욱 위축된 상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9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반도체 매도가 출회된 것은 G2(미국·중국)의 경기 불안도 있지만, 반도체 업황과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26일(현지시간) 마이크론 테크놀러지 실적 발표와 다음달 초 삼성전자 실적 가이던스 공개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주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를 메모리 시장 전반의 단기 악재로 판단한다"면서 "다만 악재가 반영된 이후 메모리 기업들의 주가는 다시 반등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주를 덜어낸 외국인들은 바이오와 2차전지주를 대거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인들은 알테오젠 주식을 3307억원어치 사들였고, 이 종목은 순매수 상위 1위를 기록했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알테오젠에 대해 "연초부터 기대된 항체약물접합체(ADC) 치료제의 피하주사(SC) 제형 개발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ADC 치료제가 항암 치료 분야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계약 체결 시 기업가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외국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2253억원어치 사들였다. 이 종목은 알테오젠에 이어 순매수 2위를 기록했다. 통상 바이오주는 금리 인하의 수혜주로 꼽히는데, 이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이 단행되면서 향후 조달 비용 감소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감이 커진 결과다. 또 지난 9일 미국 생물보안법이 하원을 통과한 점도 바이오주 투심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이다. 생물보안법이 미 안보에 우려가 되는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제정된 만큼,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이유에서다.

외국인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LG에너지솔루션(1269억원·6위) 삼성SDI(1168억원·7위) 에코프로비엠(663억원·10위) 등 2차전지주도 다수 포함됐다. 그간 2차전지주들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미국 11월 대선 불확실성 등으로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미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선전하자 전기차 관련 정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또 유럽에서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보조금 재가 논의가 시작된 점도 투심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최근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올 3분기 차량 인도 실적이 시장 전망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국내 2차전지주 반등에 힘을 보탰다. IB 바클레이스의 애널리스트 댄 레비는 테슬라의 3분기 인도량을 약 47만대로 예상했다. 이는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시장 평균 추정치(약 46만대)보다 많고, 지난해 3분기(43만5059대)와 비교해도 8% 증가한 수준이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2차전지 섹터 추세 전환의 함수는 정책(보조금)과 테슬라·BYD 등 전기차 상위 플레이어"라며 "대선 결과와 유럽 지역 정책 시행 여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긍정적 방향임은 분명하다"고 짚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