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원장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원장
"소아과 오픈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권역별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잘 구축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죠.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지역 사회에 녹아들어 직접 교육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료 이용 행태를 바꿀 수 있는 다양한 방향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은 25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아카데미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아이들의료재단은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국내 하나 뿐인 재단이다. 성북 우리아이들병원과 구로 우리아이들병원 2곳이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으로 지정됐다.

철원에서 공보의 생활을 하면서 대학병원 교수의 삶 대신 개원을 결심한 정 이사장은 "공보의 시절 산소포화도가 크게 떨어져 큰 병원 여러곳으로 전원을 의뢰했는데 다들 받지 못한다는 얘기에 직접 병상을 비우고 사흘 밤낮을 새면서 돌봐야 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병원이 많은데 왜 이 아이는 치료 받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편리하고 전문성을 갖춘 병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2013년 구로에 처음 병원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모두 3개월 안에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3년 간 외래 환자가 60만명을 넘을 정도로 대표 아동병원으로 성장했다.

개원 후 얼마되지 않아 입소문이 나면서 병원에서 진료 받기 위해 줄서는 보호자들이 '오픈런' 행렬을 이뤘다. 아침에 정 원장이 출근하면 대기 환자가 40여명을 넘는 날이 계속됐다.

병원 주변엔 주차를 위해 대기하는 차량 탓에 교통체증까지 빚어졌다. 정 이사장은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는데 집회를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아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오픈런' 병원이었지만 정 이사장은 "부끄러웠다"고 했다. 결국 환자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대로 선착순 접수해 환자를 받던 시스템을 '예약제'로 바꿨다. 환자가 줄어 20% 정도 손실이 불가피했지만 환자 만족도는 높아졌다.

그는 "조손 가정이나 조부모가 손주를 부양하는 가정이 많아 어르신 보호자가 많은데 앱 등으로 예약을 받으면 사용 장벽이 컸다"며 "웹사이트에서 간편하게 예약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후엔 '오픈런'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정 이사장이 처음 병원을 개원하던 10년 전에도, 지금도 소아청소년과는 '돈이 되지 않고 인기 없는 진료과'다. 하지만 모든 의사들이 돈만 보고 진료과를 선택하진 않는다고 정 이사장은 설명했다. 소아 환자를 보는 보람과 사명으로 진료과를 택하는 의사들이 남아있다는 취지다.

소아과 '오픈런' 현상도 단순히 의사수가 부족한 탓보다는 다양한 복합적 문제가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지역 상가마다 환자 눈높이에 맞는 소아과를 열길 바란다면 의사가 1만명이 늘어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권역별 의료기관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아 심장 환자는 주변에 심장을 전문으로 보는 병원으로, 소아 외상환자는 주변 외상 담당 병원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지역마다 이런 '선택과 집중' 모델을 구축하면 '오픈런'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직접 지역 사회와 어울리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게 정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보호자를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며 "소아청소년과 역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때"라고 했다.

실제 우리아이들병원은 보호자들이 빈번하게 병원을 찾는 질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을 알리는 교육 강좌를 수시로 열고 있다.

그는 "보호자에게 열경련 대응 방법을 안내하고 수족구병이 유행한다고 하면 미리 SNS나 지역 어린이집연합회를 통해 질병 정보를 알리기도 한다"고 했다. 부모들이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무조건 병원을 찾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나'라는 심정으로 아동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젠 사명감에만 기댈 수는 없다"며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