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가계대출 금리를 다시 인상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말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되 금리는 올리지 말라’는 주문을 내놓은 이후 한 달 만이다. 정부 압박에 따라 은행들이 이달 내내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했는데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자 은행들이 다시 금리 조정에 나선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주택 매수심리에 불이 붙을 것이란 우려가 큰 만큼 은행권의 선제적 금리 인상 행렬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권, 한달 만에 금리 인상 재개

○시중은행, 한 달 만에 금리 인상

신한은행은 다음달 4일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1~0.2%포인트 인상한다고 25일 발표했다. 금리가 5년이나 10년 동안 유지되는 고정금리형 주담대 금리는 0.1%포인트 인상하고, 금리가 6개월마다 바뀌는 변동금리형 주담대(신잔액 코픽스 연동) 금리는 0.2%포인트 올린다.

실수요자가 주로 받는 전세대출 금리는 더 큰 폭으로 오른다. 신한은행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전세대출 중 금리가 2년 동안 고정되는 전세대출 상품 금리를 0.4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하는 2년 고정금리형 전세대출 상품 금리는 0.4%포인트 인상한다. 금리 변동 주기가 6개월이거나 1년인 전세대출 금리는 주택금융공사와 HUG 보증상품 모두 0.1%포인트 올린다. 신한은행은 “가계부채가 안정화되는 시점까지 조치를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들은 신용대출 금리도 올리고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 24일 금리가 6개월마다 변하는 신용대출 상품의 가산금리를 0.3%포인트 인상했다. 같은 기간 금리가 1년마다 바뀌는 신용대출의 가산금리는 0.1%포인트 올렸다.

○가계대출 증가세 지속

대형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축소하거나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한 것은 약 1개월 만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은 가계대출 급증세를 억제하라는 정부 압박에 따라 지난 7~8월 두 달 동안에만 총 22회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5일 방송사 인터뷰를 통해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 인상은 우리(정부)가 원한 것이 아니다”며 “은행에서 미시적 관리를 통해 (가계대출) 관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독당국 수장의 발언이 나온 직후 은행들은 일제히 금리 인상 조치를 중단했다. 대신 주담대 한도를 축소하거나 갭투자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전세대출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 원장 발언 이후 이날까지 5대 은행이 제각각 시행한 대출 제한 강화 조치만 총 11회에 달한다.

금리 인상 대신 가계대출 조건 강화에 나선 주요 은행들이 다시 금리를 높인 것은 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19일 2조6551억원 늘었다. 8월(9조6259억원)과 7월(7조1660억원)의 월간 증가 폭과 비교하면 줄었지만, 추석 연휴를 고려하면 증가 속도가 여전히 가파르다는 게 은행들의 시각이다.

은행들은 대출을 접수하는 채널도 좁히고 있다. 신한은행은 27일부터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전세대출, 집단잔금대출 접수를 중단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다음달 중순께 동일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고 시행 날짜를 조율 중이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