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MBK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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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M&A 고려아연 사태
막강 자금력 갖춘 사모펀드에
경영권 취약 韓 기업들 '비상'
PEF發 배반과 포식의 시대
무방비로 맞이해선 안 돼
조일훈 논설실장
막강 자금력 갖춘 사모펀드에
경영권 취약 韓 기업들 '비상'
PEF發 배반과 포식의 시대
무방비로 맞이해선 안 돼
조일훈 논설실장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탈취가 성공한다면 우리 경제계는 몇 가지 심각한 질문을 받아 들어야 한다. 순전히 돈의 힘으로 오랜 업력의 기업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 타당한가. 경영 능력이 있더라도 돈이 없는 경영자는 아무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나. MBK가 무작정 쳐들어간 것은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스스로 외세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고려아연 공동창업자 중 한 가족이 기득권까지 포기하면서 판을 깔아줬다. 지난해 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난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도 형이 도관 역할을 했다. “못 먹는 밥, 재나 뿌리자”는 억하심정이었을 터다.
하지만 MBK는 상황이 뒤바뀌어 고려아연의 또 다른 동업자나 한국타이어의 동생이 손을 내밀었어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형이 잘하고 동생이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사냥꾼에게 그런 규칙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질문은 계속된다. 재벌 중심의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는 정녕 청산해야 할 악(惡)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세계적 경쟁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투기 자본의 실체나 국적성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본사의 해외 이전도 용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익성 없고 생산성도 낮은 국내 사업장과 고용은 모두 해외로 옮겨야 하나.
그동안 한국에서 활동해온 사모펀드(PEF)는 주로 우호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뒤 투자금을 회수해 왔다. MBK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경영 합리화와 자산 효율화 같은 선진 기법을 이식하는 역할을 해왔다. ING생명 코웨이 두산공작기계 등을 정상화하거나 밸류업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해당 기업 모두가 만족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선 고급 주얼리 브랜드 타사키와 커피전문점 고메다, 중국에선 루예제약 등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 홈플러스 C&M 네파 같은 실패 사례도 있지만 MBK와 김병주 회장의 국제적 평판에 흠집을 내진 못했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성장한 자금력은 막강하다. 이번 고려아연 공격 때는 무려 8조원짜리 펀드를 투입했다. MBK의 돌변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곤혹스럽다. 미국 아이비리그를 나와 월가식 자본주의에 단련된 수뇌부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깔려 있다. 지주회사 시가총액이 10조원을 간신히 넘기는 LG나 SK그룹도 여차하면 사정권이다.
MBK의 콧대는 높다. 운용 자산이 30조원을 넘어서면서 독보적 위상을 확보했다. 이번 적대적 M&A처럼 금단의 영역까지 엿본다. 사석에선 “이제 더 이상 재벌의 쩐주 역할은 그만하겠다. 이제 그들을 인수할 거다”란 말도 공공연하다. 자유로운 투자가 보장된 세상에서 펀드를 키우고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재벌이 금단의 기업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엔 어느새 교만과 독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가 MBK인데 뭘 못해”라는 식이다. 이제 그들은 기존 경영자를 설득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고 성사도 확실하지 않은 우호적 M&A는 성가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풍부한 실탄을 앞세운 적대적 M&A가 투자자와 약정한 기간 내 실탄을 소진하는 데 훨씬 손쉽고 통렬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눈치 보느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월가 스타일의 화려한 공격력을 선보일 기대에 부풀었을 수도 있다.
내친 걸음이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비난이나 국수주의적 반발은 잠시일 뿐, 판이 잘 정리되면 달랑 2조원으로 시총 14조원짜리 알짜 기업을 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앞으로 더 큰 장이 설 수도 있다. 한국 주력 기업 대부분은 투자 확대와 글로벌 시장 개척 과정에서 내부 지분율이 많이 떨어져 있다. 가족 간·세대 간 경영권 승계(이전) 과정에서 주식 분산도 폭넓게 이뤄졌다. 자금력을 보유한 글로벌 펀드들이 언제든 내부 균열과 갈등을 뒤집고 들어갈 여지가 크다. 배반의 계절은 포식자를 부른다. 다들 덫에 걸리지 않도록 집안 단속부터 하라고 해야 하나. 국부를 지키기 위한 정부와 기업 단위의 근원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고려아연이 끝내 넘어가면 MBK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위험한 포식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MBK는 상황이 뒤바뀌어 고려아연의 또 다른 동업자나 한국타이어의 동생이 손을 내밀었어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형이 잘하고 동생이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사냥꾼에게 그런 규칙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질문은 계속된다. 재벌 중심의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는 정녕 청산해야 할 악(惡)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세계적 경쟁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투기 자본의 실체나 국적성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본사의 해외 이전도 용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익성 없고 생산성도 낮은 국내 사업장과 고용은 모두 해외로 옮겨야 하나.
그동안 한국에서 활동해온 사모펀드(PEF)는 주로 우호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뒤 투자금을 회수해 왔다. MBK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경영 합리화와 자산 효율화 같은 선진 기법을 이식하는 역할을 해왔다. ING생명 코웨이 두산공작기계 등을 정상화하거나 밸류업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해당 기업 모두가 만족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선 고급 주얼리 브랜드 타사키와 커피전문점 고메다, 중국에선 루예제약 등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 홈플러스 C&M 네파 같은 실패 사례도 있지만 MBK와 김병주 회장의 국제적 평판에 흠집을 내진 못했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성장한 자금력은 막강하다. 이번 고려아연 공격 때는 무려 8조원짜리 펀드를 투입했다. MBK의 돌변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곤혹스럽다. 미국 아이비리그를 나와 월가식 자본주의에 단련된 수뇌부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깔려 있다. 지주회사 시가총액이 10조원을 간신히 넘기는 LG나 SK그룹도 여차하면 사정권이다.
MBK의 콧대는 높다. 운용 자산이 30조원을 넘어서면서 독보적 위상을 확보했다. 이번 적대적 M&A처럼 금단의 영역까지 엿본다. 사석에선 “이제 더 이상 재벌의 쩐주 역할은 그만하겠다. 이제 그들을 인수할 거다”란 말도 공공연하다. 자유로운 투자가 보장된 세상에서 펀드를 키우고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재벌이 금단의 기업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엔 어느새 교만과 독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가 MBK인데 뭘 못해”라는 식이다. 이제 그들은 기존 경영자를 설득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고 성사도 확실하지 않은 우호적 M&A는 성가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풍부한 실탄을 앞세운 적대적 M&A가 투자자와 약정한 기간 내 실탄을 소진하는 데 훨씬 손쉽고 통렬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눈치 보느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월가 스타일의 화려한 공격력을 선보일 기대에 부풀었을 수도 있다.
내친 걸음이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비난이나 국수주의적 반발은 잠시일 뿐, 판이 잘 정리되면 달랑 2조원으로 시총 14조원짜리 알짜 기업을 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앞으로 더 큰 장이 설 수도 있다. 한국 주력 기업 대부분은 투자 확대와 글로벌 시장 개척 과정에서 내부 지분율이 많이 떨어져 있다. 가족 간·세대 간 경영권 승계(이전) 과정에서 주식 분산도 폭넓게 이뤄졌다. 자금력을 보유한 글로벌 펀드들이 언제든 내부 균열과 갈등을 뒤집고 들어갈 여지가 크다. 배반의 계절은 포식자를 부른다. 다들 덫에 걸리지 않도록 집안 단속부터 하라고 해야 하나. 국부를 지키기 위한 정부와 기업 단위의 근원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고려아연이 끝내 넘어가면 MBK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위험한 포식자들이 몰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