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샤넬 매장 앞에서 대기하는 소비자들. /한경DB
서울의 한 샤넬 매장 앞에서 대기하는 소비자들. /한경DB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중고 명품 매장이 문을 열었다. 샤넬 디올 펜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생로랑 등 하이엔드급 인기 명품 브랜드 중고 제품을 판다. 이 매장은 독일 대형 면세 사업자인 게브르하이네만이 열었다. 1년여 간 사업을 하며 여행객들 사이에서 중고 명품 수요를 테스트한다. 앞서 게브르하이네만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의 한 명품시계 편집숍에서 중고 명품시계 판매를 하는 것으로 공항에서 중고 명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엿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근 공항에 중고 명품 매장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앞서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 캐나다 몬트리올 트뤼도 공항에도 중고품 매장이 운영을 시작했다. 명품은 면세점 사업의 핵심 중 핵심이다. 명품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면세 사업 향방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중요하다. 면세점들이 중요한 공간을 중고 숍에 내어주고 있다는 건 중고 명품 성장세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게 업계 해석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문을 연 중고 명품 매장. 사진=포브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문을 연 중고 명품 매장. 사진=포브스
실제로 소비자들은 값 비싼 신상품 대신 중고 명품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통계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 중고 명품 시장은 450억유로(약 65조원) 규모에 달했다. 전체 명품 시장의 약 12%에 해당하는 수치다. 2017년과 비교하면 6년 만에 125% 불어났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올 1~8월 구구스나 시크 같은 온라인 중고 명품 거래 전문 플랫폼의 신용·체크카드 결제액은 1474억원으로 2년 전(658억원)보다 2배 넘게 늘었다. 패션을 주로 취급하는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역시 올 상반기 중고 명품 검수 서비스(번개케어)를 거친 거래액이 43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배로 증가했다.

경기 둔화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정가보다 싼 가격대의 중고 제품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게다가 팬데믹 기간에 백화점이나 명품 매장에서 ‘오픈런’ 하면서 사들인 명품이 중고로 흘러 나오면서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팬데믹 때 폭발적 명품 소비를 이끈 소비자들이 현금이나 여윳돈 마련을 위해 명품을 중고 시장에 내놓으면서 중고 가격이 떨어졌고 새로운 구매층이 여기로 몰리는 셈이다.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 입점한 중고 명품 매장.사진=TR비즈니스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 입점한 중고 명품 매장.사진=TR비즈니스
명품 마니아 이모 씨(45)도 최근엔 백화점을 거의 가지 않는다. 코로나19 시기만 하더라도 명품 오픈런을 위해 한 주에 한 두번씩 백화점을 들렀던 이 씨지만 최근 눈을 돌린 곳은 중고명품 플랫폼이나 오프라인숍이다. 이 씨는 "신상품이 나오고 1~2년만 기다리면 새 제품 같은 리셀(되팔기) 제품 가격이 20~30%는 떨어진다"며 "최근에도 샤넬 시즌백과 프라다 호보백, 르메르 크루아상백 등을 정가보다 80만~100만원은 싸게 샀다"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들은 중고 명품시장 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매출이 급감하고 이익이 주는 등 소비자 이탈 분위기가 체감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철옹성을 쌓고 지켜왔던 유통 주도권이 중고 유통업체에 넘어가는 게 이들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때문에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리셀 플랫폼과 소송전을 불사하며 중고품 공급을 막고자 애쓰고 있다.

중고 시장 단속에 적극적인 브랜드 중 하나가 샤넬이다. 올 초 샤넬은 리셀기업인 WGACA를 샤넬 브랜드 이미지를 무단 사용해 광고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고소해 이겼다. 판결에 따라 WGACA는 상표권 침해로 배상금 400만달러(약 54억원)를 샤넬에 지급해야 한다. 앞서 샤넬이 럭셔리 위탁판매 대기업 더 리얼리얼(The RealReal)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최근엔 애틀랜타의 리셀러를 상대로 고소전을 벌였으며 뉴욕과 중국 기반 사이트 DHGate 판매자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다.
게브르하이네만이 중고시계를 판매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의 한 명품시계 편집숍. 사진=포브스
게브르하이네만이 중고시계를 판매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의 한 명품시계 편집숍. 사진=포브스
국내에서는 샤넬을 포함해 에르메스와 나이키 등이 구매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되팔수 없도록 계약서에 명시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적을 받고 관련 문구를 시정하기도 했다.

반면 비교적 엔트리급으로 꼽히는 브랜드들은 아예 중고명품 유통에 적극 뛰어들기도 한다. 중고 시장 성장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고 관련 소비자들을 아예 자사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코치는 네이버 자회사 중고 패션 플랫폼인 포시마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디지털 ID 기술을 활용해 코치 제품을 구매한 고객은 별도 정품 인증 절차 없이 포시마크에서 리셀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끌로에 역시 작년부터 리셀 플랫폼인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를 통해 중고 판매를 지원하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