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사가 직접 주주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입법으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할 게 불 보듯 뻔하다.

현행 상법 382조 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조항의 ‘회사를 위하여’라는 문구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로 바꾸려 하고 있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주주와 이사 간엔 법적 위임관계가 없는데 상법으로 주주와 이사 관계를 규정하면 이사는 모순적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사는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지만 두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회사 미래를 위해 결정하는 대규모 투자는 단기차익 실현이 중요한 소액주주들의 반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영 판단에 대해서든 ‘주주 이익 침해’를 이유로 소송이 남발될 공산도 크다. 게다가 한국은 선진국 중 드물게 배임을 민사가 아니라 형사 범죄로 다루고 있다. 법적 리스크가 커지면 회사 명운을 가를 대형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나서기 어렵게 된다.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는 가운데 상법만 개정되면 국내 기업들이 주주 이익을 명분으로 내세운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영국과 독일,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 상법 전공 교수 중 62%가 이사 충실 의무 확대에 반대하는 것(한국경제인협회 조사)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이 공언한 대로 한국 증시를 활성화하려면 상법 개정보다 국내 증시의 MSCI 선진지수 편입을 통한 외국인 투자자금 유치나 상속세 같은 불합리한 과세체계 개편에 협조해야 한다. 상법을 바꾸려면 이사 의무 확대 대신 기업의 장기 성장 촉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이 기업과 소액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길이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밸류업(부스트업) 방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