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먼로파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메타 커넥트 2024'에서 최신형 증강현실(AR)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의 시제품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REUTERS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먼로파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메타 커넥트 2024'에서 최신형 증강현실(AR)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의 시제품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REUTERS
“오라이언은 스마트폰 이후 차세대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입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먼로파크 본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메타 커넥트 2024’에서 “지금까지 AR에 대한 모든 시도는 헤드셋, 고글, 헬멧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라이언(Orion)’은 이날 메타가 시제품을 공개한 최신 증강현실(AR) 스마트 안경이다. 안구와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스크롤과 클릭할 수 있는 제품이다. 저커버그 CEO는 “이건 홀로그램이 입혀진 실제 세계”라며 “지금으로서는 이 안경을 타임머신으로 보는 게 맞다”고 자신했다.

"눈으로 스크롤, 손동작으로 클릭"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AR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을 직접 착용해보고 있다./ 사진=AP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AR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을 직접 착용해보고 있다./ 사진=AP
오라이언은 안경, 손목밴드, ‘퍽’이라는 이름의 무선 컴퓨터 등 세 가지 기기로 구성된다. 일반적인 검은색 뿔테안경 모양의 안경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5개의 전면 카메라가 있다. 전면 카메라는 오라이언의 현재 위치와 사용자의 손 움직임을 파악하고 인공지능(AI) 기능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프레임 안 쪽에는 두 개의 카메라가 더 있다. 이 카메라는 사용자의 눈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사용자는 눈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스크롤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스크롤을 눈으로 했다면 클릭은 손가락으로 한다. 근전도측정기술(EMG)을 활용하는 손목 밴드는 사용자의 미묘한 손동작을 파악한다. 팔을 들어 올릴 필요 없이 엄지와 검지를 집는 것만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효과를 낸다. 엄지와 중지를 집으면 홈페이지로 돌아간다. 메타가 오랜 시간 연구해온 ‘신경 인터페이스’ 기반이다. 주머니나 가방에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퍽은 두 개의 반도체가 탑재돼있는 무선 컴퓨터다. 안경과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만 있으면 무선으로 안경의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도록 기능한다.

메타가 앞서 내놓은 스마트 안경 ‘메타 레이밴’은 진정한 AR 기기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오라이언은 그동안 스마트 안경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대부분 구현했다. 오라이언의 렌즈는 선글라스처럼 약간 착색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일반 유리가 아닌 탄화규소 성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메타는 현실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탄화규소를 사용해 일반 유리 렌즈를 사용하는 다른 AR 헤드셋들과 달리 무지개 효과나 미광(迷光)이 나타나는 것을 차단했다. 탄화규소 렌즈와 함께 마그네슘으로 제작한 안경 프레임은 오라이언을 더욱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오라이언의 시야각도 지금까지 나온 스마트 안경 중 가장 큰 70도에 달한다.

오라이언이 공개된 건 메타가 2019년 커넥트 행사에서 “AR 안경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지 5년 만이다. 저커버그 CEO는 “AR 안경을 만들겠다고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 팀을 꾸렸지만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웠다”고 밝혔다. 특히 제품 무게를 100g 이하로 낮춰야하는 점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날 메타가 공개한 오라이언의 데모 영상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오라이언을 착용해보고는 “놀랍다”고 말하는 장면도 포함됐다.

메타버스에 다시 힘준 메타

메타 퀘스트3s 기기 모습./ 사진=REUTERS
메타 퀘스트3s 기기 모습./ 사진=REUTERS
메타는 2021년 “메타버스가 새로운 미래가 될 것”이라며 사명을 기존의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꿨지만, 메타버스 사업부문 ‘리얼리티 랩스’의 적자가 3년 넘게 이어지며 최근 사업 부문을 축소해왔다. 최근엔 자사 SNS 플랫폼에서 동영상에 AR 기술을 활용한 필터를 제작하는 스튜디오 ‘메타 스파크’를 폐쇄했고, ‘라호야’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프리미엄 MR 기기 개발 사업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메타가 인공지능(AI)에 집중하기 위해 메타버스 사업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날 메타가 공개한 오라이언 시제품은 메타가 여전히 메타버스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저커버그 CEO는 앞서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웨어러블 AI’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메타버스가 AI와 만났을 때 파괴력이 클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AR 스마트 안경은 대표적인 웨어러블 AI다.

메타는 이날 보급형 MR 기기 ‘메타 퀘스트3s’도 공개했다. 퀘스트3S는 고가의 팬케이크 렌즈를 일반 렌즈로 교체해 가격을 낮췄다. 128GB(기가바이트) 모델의 가격은 299.99달러로 퀘스트3 제품과 비교해 200달러 낮은 가격이 책정됐다. 이와 함께 기존에 출시됐던 퀘스트3 512GB 모델의 가격도 150달러를 낮춘 499.99달러로 재조정됐다. 퀘스트3s는 이날 미국에서 바로 예약판매가 시작됐다.

자사 SNS 플랫폼 탑재 AI 고도화

사진=REUTERS
사진=REUTERS
저커버그 CEO는 이날 자신이 최근 강조해온 AI에 대한 업데이트 사항들도 발표했다. 우선 오픈소스 AI 모델 ‘라마 3’의 업데이트 버전 ‘라마 3.2’를 공개했다. 라마3.2는 이미지·영상 등을 모두 다루는 ‘멀티모달’ AI다. 파라미터(매개변수)가 110억개, 900억개인 중형 모델과 10억개, 30억개인 초소형 모델로 구성된다. 초소형 모델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안경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최적화됐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 등 자사 SNS 플랫폼에 탑재한 AI 비서 ‘메타AI’도 고도화했다. 이날 메타는 메타AI가 주디 덴치, 존 시나, 아콰피나 등 미국 인기 배우들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음성 업그레이드 버전을 공개했다. 저커버그 CEO는 “음성은 텍스트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AI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AI가 언어를 동시통역하는 기술도 선보였다. 메타는 이날 음식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는 스페인어 숏폼 콘텐츠에 ‘AI 더빙’ 기술을 사용하자 영상이 곧바로 영어로 말하는 영상으로 바뀌는 데모영상을 공개했다. 출연자의 목소리를 AI가 곧바로 학습해 따라 할 뿐 아니라, 영상 속 인물의 입 모양도 영어에 맞게 바뀌었다. 저커버그 CEO는 이날 스마트 안경 ‘메타 레이밴’을 착용한 채 스페인어 화자와 AI의 동시통역 도움을 받으며 대화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