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출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출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완전 도둑놈들 소굴이네"

최근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체육계가 국회에서 등장하자 누리꾼들이 격앙된 반응을 내놨습니다. 우리의 세금이 어떻게 저렇게 쓰일 수 있냐는 지적입니다. 국가의 체육 분야 예산은 연간 총 1조6000억원, 그중 30%에 해당하는 4600억원이 대한체육회에 지원됩니다. 최근 함께 도마 위에 오른 대한축구협회는 연간 300억원, 배드민턴협회는 연간 약 90억원의 국고를 받습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이번에는 끝없는 체육계 논란의 이유를 파헤쳐 봤습니다.

실소 나오는 혈세 누수…수장은 "난 몰라"

출처=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
출처=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8 평창올림픽 공동 마케팅 프로그램 협약(JMPA)에 따라 대한체육회는 총 801억원을 지급받았는데, 이 중 590억원이 근거 규정도 없이 체육회 자체 수익으로 편성돼 평창 올림픽과 무관한 체육회 인건비, 운영비 등으로 쓰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대당 128만원에 달하는 올림픽 기념 휴대폰 281대가 체육회 직원에게 지급됐답니다. 이렇게 4억5100만원이 쓰였습니다. 그러고 정작 2023년에는 운영자금 문제로 30억원을 차입했다네요.

최근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은 2347만원(행사 용역비 2200만원, 출장 여비 116만원 등) 이 투입됐으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일방적인 취소로 2000만원이 넘는 혈세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지난 8월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추궁하자 이 회장은 "저는 내려올 때까지도, 도착했을 때도 저 상황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회의장에는 "하하" 실소가 나왔습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8월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8월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2시간 남짓인 체육인 대회에 대한체육회는 12억원을 투입했습니다. 통상 1600명 정도 참석해 한해의 각오를 다지는 소규모 행사지만, 1만5000여명이 참석하게 돼 연임 시도를 앞둔 이 회장의 '세 과시용'이라는 비판과 함께 혈세 낭비 의혹이 불거진 바 있습니다.

도마 위에 오른 건 회장만이 아닙니다. 최근 대한체육회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간부, 금품과 향응을 수수한 직원 등 10년간 30여명이 비위 행위로 징계받고 이 중 2명이 해임됐으나 모두 1억원 안팎의 퇴직금이 전액 지급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법인카드를 유용하거나 다른 직원의 월급을 빼돌려 비트코인에 투자한 직원도 나왔습니다.

윗물이 이렇다 보니 아랫물도 문제가 많습니다. 체육회 아래에는 지자체처럼 시도마다 체육회가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체육회는 법인카드 및 업무추진비 집행지침을 제정하지 않아 시정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감사 결과에는 "카드 사용 후 지출 내부 결재를 통해 대금을 집행하며, 법인카드 증빙(영수증)에는 사용자의 실명 서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며 "사후 지출을 위한 내부 결재에는 일자만 기재하고 시간은 명시하지 않아 목적과 취지에 맞게 카드를 사용했는지 확인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배드민턴협회에서도 술을 마실 수 있는 주점 등에서나 오후 11시 이후에 법인카드 및 업무추진비를 부적정하게 집행한 사례를 총 13건, 약 356만원을 적발했습니다.

계속 삐걱하니 더해지는 의심

출처=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실
출처=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실
스포츠계에는 대대적인 혈세 투입이 예고된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논란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먼저 국비 2000억원 지원이 걸린 국제스케이트장 부지입니다. 대한체육회는 내년 초까지 이 공모를 돌연 연기하기로 8월 결정했습니다. 내년 1월에는 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예정돼, 스케이트장 유치에 나선 전국 7개 지자체의 표를 의식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체육인들은 부지 선정이 끝나는 순간까지 3선에 도전하는 이 회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또 스포츠팬들의 눈이 쏠리는 곳은 천안입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천안축구종합센터 건설비를 위해 총 1500억원을 쓸 계획입니다. 본래는 1200억원 상당이었지만, 인건비 및 건축자재비 인상으로 대출이 불가피해 300억원을 더 받기로 했습니다. 축구 팬들은 "제대로 하는 게 맞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 현안 질의에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해당 축구센터의 가상 디자인에 'HDC아레나' 문구 사용을 지적하면서 "정몽규 회장의 협회 사유화 정황이 드러난 것 아니냐"고 의심했습니다. 이에 정 회장은 "네이밍 라이츠(Naming Rights·구장 명명권)를 팔기 위한 가칭"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규정 안 만들어 마음대로 운영"

이 모든 이유는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입니다. 대부분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체육계는 "관련 규정이 없다", "절차상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해왔습니다. 이번에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카페에서 면접을 본 후 발탁됐다는 등 논란에 대해 홍 감독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를 반박할 근거가 부족한 이유도 국민 정서에 안 맞을 뿐, 틀렸다고 할 절차 자체가 애당초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정은 만들면 정상화가 되는 일인데,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규정이 생기면 마음대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규정을 들먹이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스포츠 위상은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행정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며 "더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체육계 관계자는 "분야를 막론하고 뚜렷한 규정이나 절차가 부족한 것이 체육계의 현실"이라면서 "결국 수장에 따라 휘청이는 구조"라고 전했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대한체육회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에도 공개되는 기타 공공기관에 해당합니다. 이는 대한체육회장이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어 있어, 대한체육회를 준정부기관으로 분류하면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2007년 준정부기관에서 변경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체육계가 빠져나갈 틈이 많아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근 이 회장 등을 비롯해 대한체육회 임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왔지만, 얼마를 썼는지 그 내역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박문성 해설위원은 24일 국회 문체위 현안 질의에서 이른바 자신의 편만 모아놓고 하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꼬집으며 국민과 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해답은 자정 작용을 기대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견제 기구를 강화하는 일뿐입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에 주는 돈도 줄이고 각종 예산 관리도 직접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이 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뉴스1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이 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다." 취재하는 동안 안세영 선수의 말이 뇌리에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시스템상 문제가 발생해 대한체육회로 '대통합'을 이룬지 근 10년입니다. 우리 세금이 국민 건강 진흥을 위해, 꿈을 펼쳐야 할 선수들을 위해 제대로 쓰이기보다 누군가의 안위와 방치 하에 줄줄 새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최근 현안 질의에서 김승수 의원은 이 회장에게 1000억원을 훌쩍 넘는 법인화 및 선수 경기력 지원 기금이 몇 개 단체에 지원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회장은 "그게…한 서른 몇 개"라고 답했습니다. 정답은 64개였습니다. 김 의원은 "전혀 회장님이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천몇백억 되는 돈이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 파악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질타했습니다.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시스템이 문제일까요, 이걸 손 놓고 있는 사람의 문제일까요. 체육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언제까지 부끄러운 어른이 되시렵니까.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