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유럽의 한국' 스페인 [서평]
유럽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국가 중 하나는 스페인이다. 인구 규모와 1인당 GDP 수준이 비슷할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 역사상 수많은 외적의 침략을 받은 반도국가이자 동족상잔의 비극과 긴 독재를 경험했다. 오늘날의 스페인은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을까. 스페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사건들은 무엇일까.

<케임브리지 스페인사>는 평생 스페인을 연구한 윌리엄 D. 필립스 주니어· 칼라 란 필립스 미국 미네소타대 명예교수가 공동 집필한 스페인 역사 입문서다.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의 약사(略史)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은 스페인의 고대사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른다.

스페인은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면서 다양한 나라 및 문명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이곳에서 충돌했고, 로마가 카르타고를 몰아내면서 스페인은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했다. 이곳에 첫 왕국을 세운 건 유럽 동북쪽에서 나타난 서고트족이었다. 서고트족은 456년부터 독단적으로 이베리아반도를 손에 넣어 서고트왕국을 건설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몇 세기에 걸친 분쟁은 스페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8세기에 이르러 서고트왕국이 이슬람의 침입으로 막을 내리면서,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슬림이 이베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이슬람이 남부 알안달루스를 지배하는 동안 북부에선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 등 여러 기독교 왕국이 등장했다. 그러다 등장한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이 그라나다에서 최후의 이슬람 왕을 몰아내고, 국제사회에서 스페인의 입지를 다지는 데 힘썼다.
반도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유럽의 한국' 스페인 [서평]
이후 스페인은 거대한 제국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들은 콜럼버스를 앞세워 스페인령 아메리카제국의 첫 장을 열었다. 유럽 동맹국들과 혼인관계를 맺는 외교 전략으로 합스부르크 왕가가 스페인 왕조에 합류했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의 복잡한 외교 정세에 휘말리기도 했다. 종교혁명과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유럽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 부르봉왕가 전환 과정에서 벌어진 왕위 계승 전쟁 등 수많은 전쟁 속에서 스페인은 짧은 전성기를 떠나보냈다. 결국 유럽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의 불길에 휩쓸리고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나라를 넘겨주면서 스페인의 찬란한 중세가 끝을 맺었다.

스페인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는 스페인내전이다. 유럽 역사상 최악의 내전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전쟁은 3년에 걸친 국민군과 공화군의 다툼 끝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민군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1975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스페인엔 오랜 독재의 그늘이 드리웠다. 프랑코 독재 시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청산할 것인지는 스페인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오늘날 스페인의 다채로움은 이같이 역사적으로 다양한 거주 민족과 외부 세계의 지속적인 영향으로부터 형성됐다. 이 책은 스페인의 방대한 역사를 간추려 스페인 역사의 다양성을 '맛보기'로 이해하는 입문서로 적합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