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인류, 폭염에 대응해 진화할까
처음 폭염을 만난 것은 1994년 여름이었다. 가건물처럼 지어진 옥탑방에서 자취하는 학생에게는 더욱 잔인한 더위였다. 무작정 긴 노선의 버스를 타고 열대야로 부족했던 잠을 채우거나 책을 읽기도 했다. 그래도 견디기 힘들 땐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을 찾아 나섰다. 그랬던 1994년의 폭염은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영화로도, ‘응답하라 1994’ 같은 드라마에도 기록돼 있다.

2018년의 폭염은 이른바 ‘폭염 불감증’에 빠져 있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더워 죽겠네, 추워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라는 말을 생각 없이 달고 살아왔지만 진짜로 ‘더워 죽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키우던 고양이가 폭염 탓에 원인 모를 피부병에 걸렸고,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가 온열질환을 경험했다. 결국 그해에 큰맘 먹고 에어컨을 들여놨다.

<폭염 살인>이란 책이 있다. 저자 소개란에 ‘전 지구를 가로지르며 참혹한 기후 재앙의 현장을 전해온 최전선의 기후 저널리스트’라고 적어놓은 제프 구델이 썼다. 이 책은 2023년, 그러니까 1년 전에 이미 인간의 ‘적응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책의 2장인 ‘열과 진화’ 편은 매우 흥미롭다. 폭염에 대한 인간의 적응 가능 범위를 벗어났다는 의미를 진화론과 연결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를 우리의 진화 속도가 따라갈 수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보통 인정머리 없고 차가운 사람(원래는 남자)을 ‘냉혈한’이라고 한다. 차가운 피를 가졌다는 뜻이다. 반면에 뭔가 열정을 쏟을 일이 생기면 ‘피가 끓는다’고 하거나 ‘뜨거운 피’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인정이 많든 적든 사람 피의 온도는 늘 일정하다. 우리가 도마뱀이나 개구리처럼 체온이 변하는 생명체가 아니니까.

파충류, 양서류와 같은 변온동물은 주변 상황에 따라 체온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포유류, 조류와 같이 환경에 따라 몸 안에서 항상 안정적인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온혈동물은 체온 조절을 위해 많은 칼로리를 소모해야 한다. 그 대신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도록 진화한 온혈동물은 변온동물에 비해 크고, 빠르고, 강하고 똑똑한 생명체를 지구상에 출현시킬 수 있었다.

인류의 진화를 더위 또는 열의 관점에서 보면 ‘털이 적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땀을 흘림으로써 체온을 유지하게끔 설계됐다. 몸속에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장착한 셈이다. 다른 포유류에 비해 최소한의 털을 지닌 이유도 보다 많은 땀을 흘릴 수 있기 위해서다. 불필요한 털을 없애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이토록 대단했던 인류의 열관리 전략도 이른바 골디락스존 내에서 최적화된 시스템에 불과하다. 급속한 기후 변화로 이런 진화의 혜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거란 전망은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앞당겨 맞이한 것은 여름이 아니라 죽음이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올해 누구나 느꼈겠지만 폭염 살인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상과학(SF)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법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거대한 노아의 방주 같은 우주선을 타고 쾌적한 위성으로 가거나 우주를 떠돌거나 다른 행성을 찾아 이주하는 식이다. 물론 이것도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이나 가능한 대안이긴 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폭염이 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은 지금, 종말이 아니라 희망을 모색하기 위해 사피엔스들의 생존 협력이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