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새 총리에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67)이 당선됐다. 이시바는 어제 치러진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63)을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승리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이시바는 다음달 1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제102대 총리로 선출된다. 어렵게 정상궤도로 되돌려진 한·일 관계 측면에서는 극우 성향인 다카이치가 아니라 이시바의 당선이 다행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181표를 얻은 다카이치에게 뒤진 154표로 2위였던 이시바는 결선투표에선 국회의원표, 지역표에서 모두 앞서며 역전에 성공했다. 29세 때 처음 중의원에 당선된 이시바는 방위상·농림수산상 등 각료 경험도 풍부한 정치인이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아베의 숙적’으로 불렸는데 ‘아베 후계자’인 다카이치를 꺾은 것이다. 이시바는 과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대신 실리를 추구하며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가 당선에 큰 역할을 한 만큼 윤석열 대통령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를 정상화한 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역할이 컸다. 반일·반한 정서를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 대신 정치적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손을 맞잡았다. 윤 대통령은 국내 반발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을 제시, 복잡하게 엉킨 한·일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이번에 물러나는 기시다 총리와는 12번의 정상회담을 하며 신뢰를 쌓았고 단절되다시피 했던 경제·안보 등 정부 간 협의체도 모두 복원됐다. 북한 핵 대응 등을 위해 필수적인 한·미·일 3각 공조도 굳건해졌다. 새 총리가 될 이시바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관계 회복을 넘어 서로 믿을 수 있는 ‘진짜 이웃’이 되도록 정치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