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최근 상장회사 공개매수와 관련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시장 불안을 야기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예의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지목한 상장회사 공개매수 사례는 영풍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손 잡고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 것을 얘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29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27일 오후 부원장회의에서 "공개매수 등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전한 경영권 경쟁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상장회사 공개매수는 관련자들 간의 경쟁 과열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시장의 우려를 감안해 공개매수자, 대상회사, 사무취급자, 기타 관련자들은 공정 경쟁의 원칙을 준수하는 한편 향후 제반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특히 공개매수와 관련해 근거없는 루머나 풍문 유포 등으로 투자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 불공정거래 발생 여부에 대해 면밀히 시장 감시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필요시에는 신속히 조사에 착수해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현재 관련 종목은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한 상태이나 이후 주가 하락으로 투자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은 공시자료 등을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투자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다음달 4일 영풍·MBK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 마감을 앞두고 두 회사 간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8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8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촉발된 2조2300억원(17억 달러) 규모의 인수 난투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분쟁을 부추기는 것은 언젠가 회사가 중국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고려아연은) MBK를 이익에만 관심 있는 기업 사냥꾼으로 낙인 찍었고 (경영권이 넘어가면)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고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고려아연을 둘러싼 대결은 중국에 기술이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공급망의 거래가 어떻게 복잡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썼다.

앞서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24일 "영풍 측에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본인을 비롯한 핵심기술진이 전원 사퇴할 수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영풍과 MBK에 넘어갈 경우 고려아연 경쟁력이 급속도로 약화하고 핵심 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MBK는 고려아연을 인수하더라도 중국에 매각하는 일은 없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는 상태다. MBK는 "MBK파트너스 설립 이래로 국내 기업을 중국 기업에 한 번도 매각한 적이 없다"며 "핵심 기술을 중국 기업들에 이전하는 것은 고려아연의 기업 가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영풍과 MBK는 지난 26일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인상된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은 고려아연의 역대 최고 주가(67만2000원)보다 11.6% 높은 수준이다.

앞서 나온 공개매수신고서에 따르면 MBK의 투자목적회사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고려아연 지분 14.56%(301만4881주)를 공개매수할 계획이다.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예상 금액은 최대 2조2686억원으로, 국내 공개매수 역사상 최대 규모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