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비엔날레엔 초청 작가가 '졸린 도시'라며 만든 작품도 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제 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
산업단지, 버려진 운동장, 조개 무덤 등
도시 전체를 ‘조각의 무대’로 연출
11월 10일까지
'큰 사과가 소리없이'
산업단지, 버려진 운동장, 조개 무덤 등
도시 전체를 ‘조각의 무대’로 연출
11월 10일까지
남해로 둘러싸인 산업도시 창원이 조각 작품들의 장식장으로 다시 변신했다. 지난 27일 개막한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를 통해서다. 조각 작품을 조명하는 국내 유일의 비엔날레로, 올해 7회를 맞이했다. 창원은 김종영(1915∼1982)과 문신(1923∼1995) 등 유명 조각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을 맡은 현시원 감독은 창원의 상징적인 장소 네 곳을 전시장으로 활용해 177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비엔날레 본 전시는 창원 도심 한가운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용지호수 바로 앞에 자리한 의창구 성산아트홀에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이 놓이면서다. 이전 비엔날레와의 차별점은 건물 바깥 공간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건물 안팎이 조화를 이루게끔 만들기 위해 건물 유리창, 마당, 공용 공간에도 작품을 들여놓았다.
전시장을 들어오며 가장 먼저 보이는 홍승혜 작가의 작업이 이 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성산아트홀 로비 큰 유리창을 활용해 작품을 만듬 것이다. ‘모던타임즈’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업은 홍 작가가 산업 기계도시인 창원과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가 닮아 있다는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하루 중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서 건물 안에 비치는 그림자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작품의 포인트다. 공간을 100% 활용하기 위해 아트홀 곳곳에 작품을 세운 것도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이다. 로비 빈 공간에서 가장 먼저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백남준의 대형 설치작업 '창원의 봄'이 그렇다. 회전문 위에도 세 명의 사람 형상이 세워졌다. 산업도시 창원 속 노동자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공장, 산업도시 창원의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들도 눈에 띈다. 덴마크 작가 메테 빙켈만은 일주일간 창원을 돌아다니며 본 여성 노동자들의 방직공장에서 영감을 얻어 색깔 천으로 설치작을 제작했다. 지하에 놓인 싱가포르 작가 제이슨 리도 도시에 놓인 펜스와 바리케이트 등을 모티브로 한 설치작을 세웠다. 공장 안전 구조물을 사람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공간 구석구석에 작품을 배치했다.
지하 전시장 입구에도 노송희가 창원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을 선보인다. 제목은 ‘캣 워크’. 공장에서 노동자들 일할 때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 고양이같다는 데서 작품이 탄생했다. 여기에 창원이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길고양이들을 모두 중성화시켰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하 구내식당을 전시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공간 선정에 대해 현 감독은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수많은 손길이 닿은 공간이 식당”이라며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는 비엔날레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타이페이에서 온 작가 루오 저쉰은 식당 천장을 모두 뜯어 그 내부에 작품을 설치했다. 벽 뒤에 숨어 건물을 구성하는 파이프와 전선 등이 신체 내부 장기들과 비슷하다는 데 주목했다. 식사 공간은 밖이 휜히 내다보이게끔 개조했다. 벽을 뜯고 대형 창을 설치했다. 바깥 공간과 건물 안쪽 조각 작업들이 어울리게끔 구성한 것이다.
2층 한 전시장은 거대한 책상이 가득 메웠다. 책상 위에는 다양한 색의 종들이 빼곡하게 놓였다. 일본 작가 온다 아키의 작품 ‘벨’이다. 음악과 공간의 조화에 주목한 설치 작품이다. 아키는 비엔날레 기간동안 창원에 머물며 직접 책상 위에 올라가 종을 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성산아트홀을 벗어나도 비엔날레는 계속된다. 다음 장소는 1974년 발굴된 조개 무덤인 성산패총 고분. 창원시가 공장지대에 국가산업단지를 구축할 당시 발견되어 국가유적지로 지정된 장소다. 현 감독은 창원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도시의 역사가 담긴 장소를 전시장으로 골랐다. 전시장이자 무덤 속으로 들어서면 사운드가 울려퍼진다. 정서영 작가의 사운드 기반 작업이다. 넓은 공간에 소리가 울리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큰 조각으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테라스에는 대형 용수철이 놓였다. 최고운 작가가 내놓은 장소 특화형 작품이다. 그는 이 작업을 하기 위해 3개월간 창원에 머물며 매일 이곳을 찾아 작품의 각도를 고민했다. 용수철 너머로 항구와 공장 단지를 보이게 설계해 공장단지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조명했다. 1978년 창원산단 안에 설립됐던 동남운동장에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놓였다. 이 운동장은 한동안 노동자들이 운동회를 열다가 버려진 폐허였는데,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2006년부터 경기도미술관에 있던 정현 작가의 12m짜리 목전주를 창원으로 이동시켰다. 정현이 전국 유일하게 남은 목전주 나무를 창원 변전소에서 겨우 찾아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6년을 생각하며 정현은 이 작품을 다시 창원으로 이동시켰다. 밤새 작품을 해체해 국도로 들어 옮겼다.
30분 거리의 마산 창원시립문신미술관도 비엔날레 무대가 됐다.이곳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고향 마산으로 돌아오며 타일 하나하나 골라 만든 미술관이다. 특히 미술관 안에 놓인 나선형 회전계단이 작품이 됐다. 문신이 평생 고민했던 주제인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각’이 바로 나선형 계단 그 자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공간엔 미국 작가 크리스 로의 작품이 놓였다. 그가 창원에 와서 느끼는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로는 창원을 찾아와 조용하고 침착하다며 '졸린 도시'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미리 계획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신작 작업을 만들었다. 작품 밖 여백이랑 설치되는 공간도 조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모티브를 얻었다. '졸린 도시'라는 이미지에선 백색을 떠올리며 흰색만 사용한 대형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177점으로 전시 작품의 수가 적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1500여점이 전시된 광주비엔날레, 349점이 전시된 부산비엔날레와 비교된다. 전시장 간 거리도 멀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기 힘들다는 점도 외부 관람객에겐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177여점 중 단 40여점만 신작이다. 대부분 어디선가 본 적 있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이 떨어지기도 한다. 비엔날레는 1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창원=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비엔날레 본 전시는 창원 도심 한가운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용지호수 바로 앞에 자리한 의창구 성산아트홀에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이 놓이면서다. 이전 비엔날레와의 차별점은 건물 바깥 공간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건물 안팎이 조화를 이루게끔 만들기 위해 건물 유리창, 마당, 공용 공간에도 작품을 들여놓았다.
전시장을 들어오며 가장 먼저 보이는 홍승혜 작가의 작업이 이 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성산아트홀 로비 큰 유리창을 활용해 작품을 만듬 것이다. ‘모던타임즈’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업은 홍 작가가 산업 기계도시인 창원과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가 닮아 있다는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하루 중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서 건물 안에 비치는 그림자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작품의 포인트다. 공간을 100% 활용하기 위해 아트홀 곳곳에 작품을 세운 것도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이다. 로비 빈 공간에서 가장 먼저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백남준의 대형 설치작업 '창원의 봄'이 그렇다. 회전문 위에도 세 명의 사람 형상이 세워졌다. 산업도시 창원 속 노동자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공장, 산업도시 창원의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들도 눈에 띈다. 덴마크 작가 메테 빙켈만은 일주일간 창원을 돌아다니며 본 여성 노동자들의 방직공장에서 영감을 얻어 색깔 천으로 설치작을 제작했다. 지하에 놓인 싱가포르 작가 제이슨 리도 도시에 놓인 펜스와 바리케이트 등을 모티브로 한 설치작을 세웠다. 공장 안전 구조물을 사람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공간 구석구석에 작품을 배치했다.
지하 전시장 입구에도 노송희가 창원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을 선보인다. 제목은 ‘캣 워크’. 공장에서 노동자들 일할 때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 고양이같다는 데서 작품이 탄생했다. 여기에 창원이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길고양이들을 모두 중성화시켰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하 구내식당을 전시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공간 선정에 대해 현 감독은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수많은 손길이 닿은 공간이 식당”이라며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는 비엔날레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타이페이에서 온 작가 루오 저쉰은 식당 천장을 모두 뜯어 그 내부에 작품을 설치했다. 벽 뒤에 숨어 건물을 구성하는 파이프와 전선 등이 신체 내부 장기들과 비슷하다는 데 주목했다. 식사 공간은 밖이 휜히 내다보이게끔 개조했다. 벽을 뜯고 대형 창을 설치했다. 바깥 공간과 건물 안쪽 조각 작업들이 어울리게끔 구성한 것이다.
2층 한 전시장은 거대한 책상이 가득 메웠다. 책상 위에는 다양한 색의 종들이 빼곡하게 놓였다. 일본 작가 온다 아키의 작품 ‘벨’이다. 음악과 공간의 조화에 주목한 설치 작품이다. 아키는 비엔날레 기간동안 창원에 머물며 직접 책상 위에 올라가 종을 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성산아트홀을 벗어나도 비엔날레는 계속된다. 다음 장소는 1974년 발굴된 조개 무덤인 성산패총 고분. 창원시가 공장지대에 국가산업단지를 구축할 당시 발견되어 국가유적지로 지정된 장소다. 현 감독은 창원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도시의 역사가 담긴 장소를 전시장으로 골랐다. 전시장이자 무덤 속으로 들어서면 사운드가 울려퍼진다. 정서영 작가의 사운드 기반 작업이다. 넓은 공간에 소리가 울리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큰 조각으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테라스에는 대형 용수철이 놓였다. 최고운 작가가 내놓은 장소 특화형 작품이다. 그는 이 작업을 하기 위해 3개월간 창원에 머물며 매일 이곳을 찾아 작품의 각도를 고민했다. 용수철 너머로 항구와 공장 단지를 보이게 설계해 공장단지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조명했다. 1978년 창원산단 안에 설립됐던 동남운동장에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놓였다. 이 운동장은 한동안 노동자들이 운동회를 열다가 버려진 폐허였는데,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2006년부터 경기도미술관에 있던 정현 작가의 12m짜리 목전주를 창원으로 이동시켰다. 정현이 전국 유일하게 남은 목전주 나무를 창원 변전소에서 겨우 찾아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6년을 생각하며 정현은 이 작품을 다시 창원으로 이동시켰다. 밤새 작품을 해체해 국도로 들어 옮겼다.
30분 거리의 마산 창원시립문신미술관도 비엔날레 무대가 됐다.이곳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고향 마산으로 돌아오며 타일 하나하나 골라 만든 미술관이다. 특히 미술관 안에 놓인 나선형 회전계단이 작품이 됐다. 문신이 평생 고민했던 주제인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각’이 바로 나선형 계단 그 자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공간엔 미국 작가 크리스 로의 작품이 놓였다. 그가 창원에 와서 느끼는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로는 창원을 찾아와 조용하고 침착하다며 '졸린 도시'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미리 계획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신작 작업을 만들었다. 작품 밖 여백이랑 설치되는 공간도 조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모티브를 얻었다. '졸린 도시'라는 이미지에선 백색을 떠올리며 흰색만 사용한 대형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177점으로 전시 작품의 수가 적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1500여점이 전시된 광주비엔날레, 349점이 전시된 부산비엔날레와 비교된다. 전시장 간 거리도 멀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기 힘들다는 점도 외부 관람객에겐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177여점 중 단 40여점만 신작이다. 대부분 어디선가 본 적 있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이 떨어지기도 한다. 비엔날레는 1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창원=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