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시간, 말처럼 뛰는 파드슈발과 마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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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말의 움직임, 발레의 언어로 탄생
말의 걸음걸이를 닮은 동작
'파드슈발 (pas de cheval)'
말의 움직임, 발레의 언어로 탄생
말의 걸음걸이를 닮은 동작
'파드슈발 (pas de cheval)'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가을이 왔다. 과거 중국에서 천고마비는 공포심과 우려를 드러내는 사자성어였다고 한다. 가을이면 말이 살찌고 수확으로 물자가 풍부해져서 흉노족이 내려와 약탈을 자행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천고마비가 풍요로움을 비유하고 가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인 건 동일하다. 풍수지리에서도 말은 성공이나 재물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겨지니 한 해 동안 키운 농작물을 수확하는 가을에 썩 잘 어울리는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발레에서도 말은 중요한 동물이다. 발레의 동작 중에는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동작들이 몇 가지 있는데, <백조의 호수>나 <빈사의 백조>에 등장하는 백조의 움직임,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본뜬 ‘파드샤(pas de chat)’ 동작이 대표적이다. 말의 움직임도 발레의 언어로 탄생했다. 그중 하나가 ‘파드슈발(pas de cheval)’이다. 슈발은 프랑스어로 '말', 파드슈발은 ‘말의 걸음걸이’를 뜻한다. 말이 걷거나 달릴 때의 모양새를 본뜬 동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파드슈발은 한 다리로 서고 그 다리의 복숭아뼈 위치에 다른 쪽 다리의 발을 붙였다가 앞이나 옆, 혹은 뒤로 뻗는 동작으로, 말처럼 다리를 뻗기 전에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는 게 특징이다. 다리를 모았다가 펼 때 무릎을 구부리는 과정이 있으면 파드슈발,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동작이 된다.
▶▶▶[이전 칼럼] '고양이 걸음' 파드샤의 앙증맞은 매혹은 벗어날 수 없어
작품 안에서 파드슈발이 쓰일 때는 말의 움직임이 갖는 활기와 경쾌함을 드러낸다. <지젤>의 1막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파드되에서이다. 두 사람은 데이지꽃으로 사랑을 점치고 난 후에 함께 팔짱을 끼고 행복한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이때 파드슈발을 활용한 동작을 볼 수 있다. 보통 파드슈발은 한 다리를 바닥에 붙인 상태에서 이뤄지지만, 이 장면에서는 몸을 공중으로 살짝 띄워서 파드슈발을 더 경쾌하고 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곧 들이닥칠 불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연인은 이 장면에서 파드슈발을 통해 사랑의 설렘과 기쁨을 폭발시킨다. 이 장면이 경쾌했던 만큼 그 뒤에 지젤이 연인의 배신으로 심장병이 도져서 죽는 장면은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파드슈발뿐 아니라 발레에서는 말을 빗댄 주요한 동작이 또 있다. 최근 케이블채널 엠넷(Mnet)에서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무용수들의 피지컬과 테크닉을 놓고 경합하는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중 발레 테크닉으로 등장한 ‘마네주(manège)’도 말의 움직임에서 가져온 동작이자 이름이다. 마네주는 다리를 180도 이상 크게 벌려서 무대 가장자리를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듯 도는 동작이다. 말들이 조련장을 원형으로 도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풀네임은 ‘쿠페 주테 앙 투르낭 앙 마네주(coupé jeté en tournant en manège)’이다. 이 단어의 뜻을 풀이하자면 ‘발목에 발을 갖다 댄 후 몸을 던지듯이 뛰어올라 조련장을 원을 그리면서 도는 동작’이다. 이름이 워낙 길어서 ‘주테 앙 마네주’ 혹은 ‘마네주’ 라고 부른다.
마네주는 작품 안에서 주로 남성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동작이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테크닉이기 때문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낼 때 많이 선보이고, 솔로 무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동작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 3막 결혼식 그랑 파드되를 들 수 있다. 결혼식에서 선보이는 마네주는 신랑의 기쁜 마음을 극명하게 표출하는 테크닉이다. 이때의 마네주 안에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게 돼서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말의 힘찬 움직임과 에너지, 말의 근육과 몸이 주는 아름다움에는 백조의 그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발레에서 파드슈발과 마네주와 같은 동작이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종종 그 아름다움은 화가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 1901)에게 말은 가장 사랑하는 피사체였다. 어릴 때 사고로 다쳐서 성장이 멈춰버린 로트렉. 그는 말을 그리면서 다치기 전에 말을 탔을 때 경험했던 에너지를 다시 느끼며 그림 안에서 늘 힘차게 달렸을 것이다. 가을이다. 말의 모습을 닮은 발레의 동작들과 로트렉의 그림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꿈꾸는 것을 향해서 질주하는 아름다움을, 신이 허락한 풍요로움에는 감사를, 수확이 일어난 그 지점은 또 다른 시작인 것을.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
발레에서도 말은 중요한 동물이다. 발레의 동작 중에는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동작들이 몇 가지 있는데, <백조의 호수>나 <빈사의 백조>에 등장하는 백조의 움직임,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본뜬 ‘파드샤(pas de chat)’ 동작이 대표적이다. 말의 움직임도 발레의 언어로 탄생했다. 그중 하나가 ‘파드슈발(pas de cheval)’이다. 슈발은 프랑스어로 '말', 파드슈발은 ‘말의 걸음걸이’를 뜻한다. 말이 걷거나 달릴 때의 모양새를 본뜬 동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파드슈발은 한 다리로 서고 그 다리의 복숭아뼈 위치에 다른 쪽 다리의 발을 붙였다가 앞이나 옆, 혹은 뒤로 뻗는 동작으로, 말처럼 다리를 뻗기 전에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는 게 특징이다. 다리를 모았다가 펼 때 무릎을 구부리는 과정이 있으면 파드슈발,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동작이 된다.
▶▶▶[이전 칼럼] '고양이 걸음' 파드샤의 앙증맞은 매혹은 벗어날 수 없어
작품 안에서 파드슈발이 쓰일 때는 말의 움직임이 갖는 활기와 경쾌함을 드러낸다. <지젤>의 1막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파드되에서이다. 두 사람은 데이지꽃으로 사랑을 점치고 난 후에 함께 팔짱을 끼고 행복한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이때 파드슈발을 활용한 동작을 볼 수 있다. 보통 파드슈발은 한 다리를 바닥에 붙인 상태에서 이뤄지지만, 이 장면에서는 몸을 공중으로 살짝 띄워서 파드슈발을 더 경쾌하고 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곧 들이닥칠 불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연인은 이 장면에서 파드슈발을 통해 사랑의 설렘과 기쁨을 폭발시킨다. 이 장면이 경쾌했던 만큼 그 뒤에 지젤이 연인의 배신으로 심장병이 도져서 죽는 장면은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파드슈발뿐 아니라 발레에서는 말을 빗댄 주요한 동작이 또 있다. 최근 케이블채널 엠넷(Mnet)에서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무용수들의 피지컬과 테크닉을 놓고 경합하는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중 발레 테크닉으로 등장한 ‘마네주(manège)’도 말의 움직임에서 가져온 동작이자 이름이다. 마네주는 다리를 180도 이상 크게 벌려서 무대 가장자리를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듯 도는 동작이다. 말들이 조련장을 원형으로 도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풀네임은 ‘쿠페 주테 앙 투르낭 앙 마네주(coupé jeté en tournant en manège)’이다. 이 단어의 뜻을 풀이하자면 ‘발목에 발을 갖다 댄 후 몸을 던지듯이 뛰어올라 조련장을 원을 그리면서 도는 동작’이다. 이름이 워낙 길어서 ‘주테 앙 마네주’ 혹은 ‘마네주’ 라고 부른다.
마네주는 작품 안에서 주로 남성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동작이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테크닉이기 때문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낼 때 많이 선보이고, 솔로 무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동작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 3막 결혼식 그랑 파드되를 들 수 있다. 결혼식에서 선보이는 마네주는 신랑의 기쁜 마음을 극명하게 표출하는 테크닉이다. 이때의 마네주 안에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게 돼서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말의 힘찬 움직임과 에너지, 말의 근육과 몸이 주는 아름다움에는 백조의 그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발레에서 파드슈발과 마네주와 같은 동작이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종종 그 아름다움은 화가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 1901)에게 말은 가장 사랑하는 피사체였다. 어릴 때 사고로 다쳐서 성장이 멈춰버린 로트렉. 그는 말을 그리면서 다치기 전에 말을 탔을 때 경험했던 에너지를 다시 느끼며 그림 안에서 늘 힘차게 달렸을 것이다. 가을이다. 말의 모습을 닮은 발레의 동작들과 로트렉의 그림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꿈꾸는 것을 향해서 질주하는 아름다움을, 신이 허락한 풍요로움에는 감사를, 수확이 일어난 그 지점은 또 다른 시작인 것을.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