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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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증시 폭락할 때 6% 급등…"금리 인상 환영" 왜?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
일본 증시가 30일 급락하는 와중에도 주가가 오른 종목들이 있습니다. 일본 금융주입니다. 이달 30일 닛케이225지수가 4.80% 하락하는 가운데 일본 6위 은행인 리소나홀딩스는 5.87% 급등했습니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4.19%), 스미토모 미쓰이 파이낸셜그룹(3.06%), 지바은행(2.63%) 등 다른 금융주도 줄줄이 주가가 올랐습니다. 닛케이225지수 구성 종목 225개 가운데 이날 주가가 오른 종목은 13개였고, 그중 10개가 금융주였습니다.

일본 금융주가 오른 건 이시바 시게루 자유민주당 전 간사장이 당 총재로 선출된 것과 관련 있습니다. 직전 거래일인 지난 27일 일본 자민당은 새 총재를 뽑는 선거를 했습니다. 시장은 증시 마감 시각인 오후 3시까지도 이시바 전 간사장이 당 대표에 당선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정규 주식시장이 오후 3시에 마감되는데, 그 전에 결과가 나온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 이시바 전 간사장을 누르고 1위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장 마감 뒤에 결과가 공개된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1위에 오르며 시장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자민당이 결선 투표를 한 건,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한 후보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해야 한다는 관련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극적인 역전승을 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즉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는 다음 달 1일 일본 총리로 취임합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여서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거든요.

닛케이 폭락할 때 금융주는 상승

이시바 차기 총리의 당선이 확정된 뒤 금융주가 오른 건 그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금융주는 금리 인상기 때 실적이 개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은행의 주요 사업은 예금 등을 유치해서 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대출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입니다. 이때 은행이 예금 가입자 등에게 주는 '수신금리'는 은행의 비용이고, 돈을 대출해 간 사람이 은행에게 주는 '여신금리'는 은행의 수익입니다.
지난 27일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사진=REUTERS/연합뉴스
지난 27일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사진=REUTERS/연합뉴스
이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차이를 순이자마진(NIM)이라고 합니다. NIM은 은행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그런데 수신금리는 비교적 고정형이 많고, 여신금리는 비교적 변동형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 금리가 오를 때 은행의 비용(수신금리)은 느리게 증가하지만, 은행의 수익(여신금리)은 빨리 증가하죠. 결국 금리가 오르는 동안에는 NIM이 확대돼 은행의 수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일본 증시 투자자들은 이시바 차기 총리가 취임 뒤 기준금리 인상, 재정지출 억제 등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올라 NIM이 개선되면 은행주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종목을 매수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실제로 인플레이션 억제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 왔습니다. 그는 지난 1월 로이터 인터뷰 기사 '일본의 유력 총리 후보가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종료를 시사했다'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정책"이라며 "제로금리는 자금의 비효율적 사용 등을 야기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달에도 같은 언론 인터뷰 기사 '일본의 총리 후보 이시바가 BOJ의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에서 "금리가 높으면 성장세가 강한 기업으로 자본이 이동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외신 "BOJ, 금리 인상에 청신호"

왼쪽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REUTERS/연합뉴스
왼쪽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REUTERS/연합뉴스
이시바 차기 총리의 입장이 최근 들어서는 다소 온건해졌다는 신호도 있습니다. 그는 지난 29일 NHK방송 인터뷰 기사 '일본의 차기 총리 이시바가 온건한 통화 정책을 촉구한다' 기사에서 BOJ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물가 안정을 달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일본은행이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결정할 문제"라며 "현재의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통화정책은 완화적 추세로 유지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주식시장에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주요 외신은 이 말이 지켜질지에 대해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닛케이 아시아는 지난 28일 '차기 총리 이시바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경제를 우선시할 것' 기사에서 "이시바 차기 총리는 임기 첫 3년 동안 일본 경기를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며 "그는 근로자 임금 인상, 개인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가 제목에서 언급한 '경제'는 실물 경제의 소비를 의미합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9일 게재한 '이시바 차기 총재의 당선으로 주식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기사에서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의 아베 료타 아시아 태평양 부문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BOJ가 앞으로 추가 금리 인상을 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 역시 같은 날 게재한 '일본 주식시장이 자민당의 차기 총재 선거 이후 무너졌다' 기사에서 '바클레이스 연구원들'의 견해를 인용해 "이시바 차기 총리가 금리 결정에 대한 BOJ의 독립성을 존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엔·달러 환율 급변 가능성은 변수


변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시바 차기 총리와 BOJ가 뜻대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주요 변수 중 하나는 엔 달러 환율 급락으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 또는 '엔 쇼트 페어 트레이드'의 청산입니다.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이 지난 14일 게재한 기사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아직 시작도 안 했다"'에서 이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BOJ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엔·달러 환율이 급락하면 외국인 투자자가 일본 주식 채권 등을 대규모로 팔아치울 수 있고, 이는 자산 가격 폭락을 야기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런 상황이 현실화하면 비난의 화살이 이시바 차기 총리에게 돌아갈 수 있겠죠. 실제로 엔·달러 환율은 이시바 차기 총리의 당선이 확정된 지난 27일 1.80% 급락했습니다. 증시 전체가 폭락하는 상황이 오면 금융주라고 해도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도 이시바 차기 총리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는 선택입니다. 지난해 일본 물가상승률은 3.1%로 4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0%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지난해 2.6% 감소해 여섯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갔습니다. 이렇듯 임금 상승률은 물가를 못 따라가면서 일본 유권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영국 BBC는 지난 27일 '정치 자금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일본 여당이 차기 총리를 선출했다' 기사에서 "일본 유권자는 최근 약 반세기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식품 가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일본 근로자의 임금은 3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이 닥치면서 정부가 이런 상황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