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출통제 전쟁' 막 올랐는데…한국 '선택 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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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수출통제 셈법 복잡해지는데
韓 대응인력은 日 5분의 1
9월 美 첨단 반도체 등 24개 품목 수출통제
영, 프, 일만 허가 면제...우방 한국은 빠져
중국, 러시아 배제한 'C-1' 수출통제 확산
아직 법, 제도 준비도 안돼..."무역안보 투자 확대해야"
韓 대응인력은 日 5분의 1
9월 美 첨단 반도체 등 24개 품목 수출통제
영, 프, 일만 허가 면제...우방 한국은 빠져
중국, 러시아 배제한 'C-1' 수출통제 확산
아직 법, 제도 준비도 안돼..."무역안보 투자 확대해야"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위협하는 첨단 기술을 (중국, 러시아 등이)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선 동맹국들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컨퍼런스’에서 이 같이 말했다. 앞서 5일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첨단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등 24개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추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에스테베즈 차관의 발언은 고대역폭메모리(HBM)등 첨단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는 한국도 수출통제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요구’라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향후 무기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첨단 기술의 잠재 적국으로의 유출을 막는 수출통제가 신(新)냉전 시대 도래와 함께 고도화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 능력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턱 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첨단 반도체가 열강들의 패권 경쟁의 무기가 된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실기할 경우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내 점유율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규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 수출시장 내 점유율은 2022년 기준 2.8%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5위인 일본(3.0%)과 비슷하고, 2위인 미국(8.4%)과는 격차가 3배에 불과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임에도 무역안보에 대한 투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셈이다.
그 사이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한 수출통제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기로에 섰다. 앞서 미국은 24개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영국, 프랑스, 일본 등 3개국에 대해선 수출 허가 의무를 면제했지만 한국은 면제 대상국에서 빠졌다.
3개국은 이미 올해 상반기에 미국이 제시한 24개 품목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마친 국가들이다. 일례로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주사전자현미경(SEM), 양자컴퓨터 등 4가지 품목 관련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SEM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설계 배치도를 추출해내는데 필요한 장비다. 우방국 중에서도 대중 수출통제 전선에 동참한 국가에 대해 대우를 차등화하고 있는 셈이다.
수출통제는 안보를 목적으로 특정 품목, 기술의 수출을 금지, 제한하는 조치를 뜻한다. 그간 수출통제는 1996년 출범한 다자간 수출통제협의체인 ‘바세나르체제’에서 42개 회원국이 합의한 품목에 대해서만 이뤄져왔다.
하지만 2022년 본격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기점으로 기존의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포함한 42개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만 수출통제가 가능한 바세나르체제를 우회하기 위해 2023년 ‘C-1’ 개념을 제시했다. 만장일치가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회원국 동의가 있다면 수출 통제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과 영·프·일 3개국의 수출통제 조치는 C-1이 구체화된 사례다.
한국 정부도 연내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바세나르체제에서 합의된 품목 이외의 독자적 수출통제가 가능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등 움직이곤 있지만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긴 고민스러운 실정이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섣부른 수출통제 조치가 중국 등 상대국의 보복으로 이어지며 우리 산업에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통제 확산이 우리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면서도 “아직 미국의 수출통제 동참 요구에 응할지 답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연구원은 8월 발표된 '수출통제의 경제적 함의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기술선도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첨단기술 수출 통제가 우리 기업의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불확실성이 큰 수출통제 전쟁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선 무역안보 등 관련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컨퍼런스’에서 이 같이 말했다. 앞서 5일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첨단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등 24개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추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에스테베즈 차관의 발언은 고대역폭메모리(HBM)등 첨단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는 한국도 수출통제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요구’라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향후 무기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첨단 기술의 잠재 적국으로의 유출을 막는 수출통제가 신(新)냉전 시대 도래와 함께 고도화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 능력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턱 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첨단 반도체가 열강들의 패권 경쟁의 무기가 된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실기할 경우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압박 본격화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 정부의 수출 통제 담당 조직인 산업부 무역안보정책관(국)의 인력은 34명에 불과하다. 이는 총 인원이 554명에 달하는 미국의 무역안보 전담 조직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16분의1, 170명인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와 비교하면 5분의1 수준이다. 수출통제의 대상인 ‘전략물자’의 수출 허가 여부를 심사하는 산하 조직인 무역안보관리원 인력을 모두 합쳐도 100명 안팎에 그친다.이는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내 점유율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규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 수출시장 내 점유율은 2022년 기준 2.8%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5위인 일본(3.0%)과 비슷하고, 2위인 미국(8.4%)과는 격차가 3배에 불과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임에도 무역안보에 대한 투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셈이다.
그 사이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한 수출통제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기로에 섰다. 앞서 미국은 24개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영국, 프랑스, 일본 등 3개국에 대해선 수출 허가 의무를 면제했지만 한국은 면제 대상국에서 빠졌다.
3개국은 이미 올해 상반기에 미국이 제시한 24개 품목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마친 국가들이다. 일례로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주사전자현미경(SEM), 양자컴퓨터 등 4가지 품목 관련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SEM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설계 배치도를 추출해내는데 필요한 장비다. 우방국 중에서도 대중 수출통제 전선에 동참한 국가에 대해 대우를 차등화하고 있는 셈이다.
수출통제는 안보를 목적으로 특정 품목, 기술의 수출을 금지, 제한하는 조치를 뜻한다. 그간 수출통제는 1996년 출범한 다자간 수출통제협의체인 ‘바세나르체제’에서 42개 회원국이 합의한 품목에 대해서만 이뤄져왔다.
하지만 2022년 본격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기점으로 기존의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포함한 42개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만 수출통제가 가능한 바세나르체제를 우회하기 위해 2023년 ‘C-1’ 개념을 제시했다. 만장일치가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회원국 동의가 있다면 수출 통제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과 영·프·일 3개국의 수출통제 조치는 C-1이 구체화된 사례다.
○수출의존도 높은 한국 ‘선택 기로’에
올해를 기점으로 수출 통제의 대상과 범위는 한국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다변화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AI시스템 수출 뿐 아니라 사용, 운영, 설치 등 서비스까지 상무부 허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 ‘국가적 수출제한 프레임워크 강화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7월 생성형 AI인 챗GPT 운영사인 오픈AI가 중국 내 서비스를 차단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배경이다.한국 정부도 연내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바세나르체제에서 합의된 품목 이외의 독자적 수출통제가 가능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등 움직이곤 있지만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긴 고민스러운 실정이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섣부른 수출통제 조치가 중국 등 상대국의 보복으로 이어지며 우리 산업에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통제 확산이 우리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면서도 “아직 미국의 수출통제 동참 요구에 응할지 답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연구원은 8월 발표된 '수출통제의 경제적 함의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기술선도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첨단기술 수출 통제가 우리 기업의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불확실성이 큰 수출통제 전쟁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선 무역안보 등 관련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