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행진하던 미국 달러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피벗(통화 정책 전환)에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 가치 급등이 맞물린 영향이다. 연내 Fed의 추가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다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지속, 일본의 금리 정상화 의지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달러화 가치 하락은 이어질 전망이다.

저무는 '强달러 시대'…달러인덱스 100선 깨지나
29일(현지시간)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는 100.43을 나타냈다. 지난 한 주간 0.43% 떨어졌으며, 최근 한 달 새 1.26% 하락했다. 한 해 전인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는 6.06% 급락했다.

Fed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서 달러인덱스는 약 20년 만에 최고치인 114.1(2022년 9월)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고용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Fed가 올 9월 빅컷을 단행했고, 이에 따라 달러화 가치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 8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둔화하면서 오는 11월 빅컷 기대는 강해지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11월 빅컷 가능성은 54%로 집계됐다.

여기에 아시아 통화 강세까지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차기 총리를 맡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금리 인상을 지지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당선되자 ‘엔화 강세 랠리’가 나타나고 있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단기적으로 엔화가 달러당 140엔을 밑도는 수준까지 엔화 강세와 달러화 약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위안화 가치는 초강세를 띠고 있다. 지난주 중국 정부가 내놓은 이례적인 통화 정책 패키지 덕분이다. 위안·달러 환율은 달러당 7위안을 밑돌며 지난해 5월 후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그간 달러화에 비해 평가 절하돼온 아시아 통화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며 “달러인덱스가 100선 붕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도 전 거래일보다 10원80전 내린 1307원80전까지 떨어졌다. 지난 1월 3일(1304원80전) 이후 약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엔화와 위안화가 동반 강세를 보인 영향으로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원70전 내린 1310원90전에 개장해 장중 한때 1303원40전까지 하락하는 등 1300원대에서 움직였다. 다만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2.13% 하락 마감하자 이후 환율이 다시 1310원대로 올라섰다.

김은정/강진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