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빛과 공기로 공간을 채우고 그리고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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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
부산의 카페 '히떼 로스터리'
부산의 카페 '히떼 로스터리'
산업혁명의 여파로 유럽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례없는 인구 유입은 대도시의 주거 환경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 시기의 건축은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대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역사는 빛을 위한 투쟁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건축물이 도시를 채워가면서 많은 사람이 충분한 빛과 공기, 녹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창한 ‘필로티(Piloti)’는 이 ‘빛과 공기를 얻기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필로티는 건물 1층에는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만을 둔 채로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다. 당대의 건물들은 벽으로 하중을 지탱해 점점 두껍고 답답한 형태로 증식해 왔는데, 필로티(기둥)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최대한의 채광과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양식이 탄생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빛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르코르뷔지에의 ‘투쟁’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지어진 우리나라의 빌라 대부분은 1층을 기둥으로만 지탱하고 있는 필로티 구조를 택했다.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사생활 보호에 용이하다는 이유였다.
현대의 도시들은 대체로 정해진 한도에서 최대한의 건축물을 세우려고 한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은 더 많은 빛과 쾌적한 공기를 얻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도시의 1층은 상업시설에 자리를 내주거나 주차 공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상가들의 불빛은 자정을 넘어서도 도시를 비췄고, 그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잠이 들지 않는 도시는 이 상가들이 불어넣는 열기로 숨을 쉬었다.
2013년, 정효재와 최희윤은 그 열기 속에 카페를 열었다. 정효재는 대학 시절 커피 업계에 발을 들여 10년의 경력을 쌓아왔고, 최희윤은 공간을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이 카페를 여는 것은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따라 카페를 열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열기는 금세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수없이 늘어선 빌딩 사이를 정처 없이 거니는 도시인들처럼, 그들이 꾸려가는 공간도 꿈꿨던 모습과 현실 사이를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이 만든 카페는 경쟁업체가 됐고, 손님들은 희망이 됐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절망이 되기도 했다. 어렵게 일궈낸 꿈은 3년을 채우지 못했다. 아마도 수많은 자영업자의 이야기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10만여 개의 카페가 영업하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한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래 처음으로 커피 전문점 수가 치킨 전문점 수를 추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커피전문점의 종사자 1인당 매출액은 5000여만 원으로 조사 대상 업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10만 개 카페를 달성했던 2023년에는 한 해에만 1만2000여 개의 카페가 문을 닫았다.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자영업자의 모습은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자영업자의 모습은 저마다의 사연이 흐르고 넘쳤다.
정효재와 최희윤에게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행복한 미래는 온데간데없었고 3년간의 구슬픈 사연만 남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커피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꿈꿔왔던 커피와의 삶이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일지 한 번 더 묻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과 대만, 호주와 노르웨이, 덴마크 등 10여 개국을 찾아 카페를 돌아다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을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다. ‘히떼 로스터리’는 여행에서 찾은 해답이었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유수의 카페들은 멋을 내거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소비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공간을 꾸려가는 이의 취향을 소신껏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6개월의 여행은 두 사람의 취향에 확고함을 더했다. 확신이 생겼으니, 번화가도, 1층에 자리 잡은 목 좋은 상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숲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나 쉼터를 뜻하는 ‘히떼(Hytte)’라는 뜻처럼, 두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았다. 커피를 만드는 일에도 확고한 방향성을 두었다.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들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포근한 빛과 공기가 공간을 채우니, 사람들도 그 빛과 공기를 찾아 카페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이 번화가에서 벗어나 조금은 걸어야 하는 곳이라도, 좁은 계단을 부러 올라야 하는 2층이어도 상관없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방향성 있는 커피는 명확한 취향을 가진 상품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니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문을 연 지 1년 만인 2019년, 히떼의 두 주인은 더 많은 사람에게 커피를 내릴 수 있도록 더 넓은 공간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르는 사이에 원두 납품이 늘어나 별도의 로스팅 시설을 마련하게 됐고,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은 세 곳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히떼의 공간은 로스터리와 함께 운영하는 한 곳을 제외하면 두 곳의 카페는 모두 2층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에는 모두 여유로운 빛과 공기가 가득했다. 창밖으로는 길거리를 바삐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나뭇잎이 풍경을 채웠다. 복잡한 도시의 열기를 피해 잠시라도 숨을 쉬고 싶은 사람들이 시선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든 작은 간판을 보고 계단을 올랐다. 필로티를 비롯해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했던 근대건축의 원칙은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은 거세고 끊임이 없어서 그 원칙들이 세심하기 자리를 잡기 전에 도시의 빛과 공기를 위한 투쟁은 더없이 치열해졌다. 도시는 더욱 살을 찌워 빼곡하게 건물이 늘어섰고, 그 사이로 삶의 시계가 빨라진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음을 이어간다.
하지만 숨이 막힐 듯 빼곡하게 들어선 건축물 사이에도 누군가의 숨통을 틔우게 하고, 누군가에게 한 줌의 빛을 내어주는 공간들이 있다. 인간을 위한 건축의 원칙은 유명한 건축가의 손에만 달리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식혀가며 마실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충분한 빛과 공기를 즐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조원진 칼럼니스트
한편, 이 시기의 건축은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대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역사는 빛을 위한 투쟁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건축물이 도시를 채워가면서 많은 사람이 충분한 빛과 공기, 녹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창한 ‘필로티(Piloti)’는 이 ‘빛과 공기를 얻기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필로티는 건물 1층에는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만을 둔 채로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다. 당대의 건물들은 벽으로 하중을 지탱해 점점 두껍고 답답한 형태로 증식해 왔는데, 필로티(기둥)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최대한의 채광과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양식이 탄생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빛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르코르뷔지에의 ‘투쟁’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지어진 우리나라의 빌라 대부분은 1층을 기둥으로만 지탱하고 있는 필로티 구조를 택했다.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사생활 보호에 용이하다는 이유였다.
현대의 도시들은 대체로 정해진 한도에서 최대한의 건축물을 세우려고 한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은 더 많은 빛과 쾌적한 공기를 얻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도시의 1층은 상업시설에 자리를 내주거나 주차 공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상가들의 불빛은 자정을 넘어서도 도시를 비췄고, 그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잠이 들지 않는 도시는 이 상가들이 불어넣는 열기로 숨을 쉬었다.
2013년, 정효재와 최희윤은 그 열기 속에 카페를 열었다. 정효재는 대학 시절 커피 업계에 발을 들여 10년의 경력을 쌓아왔고, 최희윤은 공간을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이 카페를 여는 것은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따라 카페를 열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열기는 금세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수없이 늘어선 빌딩 사이를 정처 없이 거니는 도시인들처럼, 그들이 꾸려가는 공간도 꿈꿨던 모습과 현실 사이를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이 만든 카페는 경쟁업체가 됐고, 손님들은 희망이 됐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절망이 되기도 했다. 어렵게 일궈낸 꿈은 3년을 채우지 못했다. 아마도 수많은 자영업자의 이야기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10만여 개의 카페가 영업하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한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래 처음으로 커피 전문점 수가 치킨 전문점 수를 추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커피전문점의 종사자 1인당 매출액은 5000여만 원으로 조사 대상 업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10만 개 카페를 달성했던 2023년에는 한 해에만 1만2000여 개의 카페가 문을 닫았다.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자영업자의 모습은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자영업자의 모습은 저마다의 사연이 흐르고 넘쳤다.
정효재와 최희윤에게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행복한 미래는 온데간데없었고 3년간의 구슬픈 사연만 남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커피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꿈꿔왔던 커피와의 삶이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일지 한 번 더 묻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과 대만, 호주와 노르웨이, 덴마크 등 10여 개국을 찾아 카페를 돌아다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을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다. ‘히떼 로스터리’는 여행에서 찾은 해답이었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유수의 카페들은 멋을 내거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소비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공간을 꾸려가는 이의 취향을 소신껏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6개월의 여행은 두 사람의 취향에 확고함을 더했다. 확신이 생겼으니, 번화가도, 1층에 자리 잡은 목 좋은 상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숲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나 쉼터를 뜻하는 ‘히떼(Hytte)’라는 뜻처럼, 두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았다. 커피를 만드는 일에도 확고한 방향성을 두었다.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들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포근한 빛과 공기가 공간을 채우니, 사람들도 그 빛과 공기를 찾아 카페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이 번화가에서 벗어나 조금은 걸어야 하는 곳이라도, 좁은 계단을 부러 올라야 하는 2층이어도 상관없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방향성 있는 커피는 명확한 취향을 가진 상품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니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문을 연 지 1년 만인 2019년, 히떼의 두 주인은 더 많은 사람에게 커피를 내릴 수 있도록 더 넓은 공간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르는 사이에 원두 납품이 늘어나 별도의 로스팅 시설을 마련하게 됐고,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은 세 곳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히떼의 공간은 로스터리와 함께 운영하는 한 곳을 제외하면 두 곳의 카페는 모두 2층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에는 모두 여유로운 빛과 공기가 가득했다. 창밖으로는 길거리를 바삐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나뭇잎이 풍경을 채웠다. 복잡한 도시의 열기를 피해 잠시라도 숨을 쉬고 싶은 사람들이 시선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든 작은 간판을 보고 계단을 올랐다. 필로티를 비롯해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했던 근대건축의 원칙은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은 거세고 끊임이 없어서 그 원칙들이 세심하기 자리를 잡기 전에 도시의 빛과 공기를 위한 투쟁은 더없이 치열해졌다. 도시는 더욱 살을 찌워 빼곡하게 건물이 늘어섰고, 그 사이로 삶의 시계가 빨라진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음을 이어간다.
하지만 숨이 막힐 듯 빼곡하게 들어선 건축물 사이에도 누군가의 숨통을 틔우게 하고, 누군가에게 한 줌의 빛을 내어주는 공간들이 있다. 인간을 위한 건축의 원칙은 유명한 건축가의 손에만 달리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식혀가며 마실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충분한 빛과 공기를 즐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