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 적국으로의 첨단 기술·자원 유출을 막는 수출통제가 신(新)냉전시대 도래로 확산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 역량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한국 '처참한 상황'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수출 통제 담당 조직인 산업부 무역안보정책관(국)의 인력은 34명에 불과하다. 이는 총 인원이 554명에 달하는 미국의 무역안보 전담 조직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16분의 1 수준에 그친다. 170명인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와 비교해도 5분의 1 정도다. 수출통제 대상인 ‘전략물자’의 수출 허가 여부를 심사하는 산하 조직인 무역안보관리원 인력을 모두 합쳐도 100명 안팎에 그친다.

이런 조직과 인원은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내 점유율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 수출시장 내 점유율은 2022년 기준 2.8%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5위인 일본(3.0%)과 비슷하고, 2위인 미국(8.4%)과는 격차가 세 배에 불과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임에도 무역안보 투자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셈이다.

그사이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한 수출통제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달 초 양자컴퓨터, 주사전자현미경(SEM) 등 첨단 반도체 관련 24개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추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한 행보다. 당시 미국은 영국 프랑스 일본 등 3개국엔 수출 허가 의무를 면제했지만, 한국은 대상에서 뺐다. 같은 우방국이지만 한국은 중국 등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한국 입장에선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우방국인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지만 섣부른 수출통제 조치는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통제 확산이 우리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면서도 “아직 미국의 수출통제 동참 요구에 응할지 답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