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대뜸 헤드뱅잉·샤우팅…록 콘서트 같은 뮤지컬
1890년대 미국을 흔들었던 ‘리지 보든 사건’. 매사추세츠주에 살던 부부 앤드루 보든과 에비 보든이 한밤중에 도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부부의 둘째 딸 리지 보든이 지목됐지만, 미제 살인 사건으로 종결됐다.

100년 전 살인 사건을 뮤지컬로 그려낸 ‘리지’(사진). 살인이 벌어진 비릿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풍스러운 저택이 무대를 꾸민다. 주인공은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네 명의 여인. 경찰의 강력한 의심을 받은 리지 보든과 그의 언니 엠마 보든, 보든가의 하녀 브리짓과 리지의 친구 앨리스다. 음침하고 구슬픈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이들은 각자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소름 돋는 미스터리 추리극이 펼쳐지나 싶은 순간 네 명의 주인공이 갑자기 마이크를 집어 든다. 난데없이 날카로운 일렉 기타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화끈한 드럼 비트가 고막을 때리는 록 밴드의 연주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조금 전까지 가녀린 말투로 억울함을 호소하던 네 명의 여인은 이중인격자라도 된 듯 샤우팅을 내지르며 머리를 앞뒤로 흔든다.

파격적인 반전이 흥미롭지만 완급 조절이 아쉽다. 관객이 작품 세계에 스며드는 과정을 거치는 극 초반부터 뜨거운 무대가 펼쳐져 몰입이 어렵다. 물론 록 음악이 주는 짜릿함은 완성도가 높다. 록 밴드가 뮤지컬 음악에 입혀진 수준이 아니라 ‘진짜’ 록 음악이 진하게 느껴진다. 쫀득한 일렉 기타 연주와 드럼 비트가 공연장을 울리는 라이브 연주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공식적으로는 2막 구성 작품이지만 사실상 3막 수준인 커튼콜이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 뮤지컬이라는 옷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본격적인 록 콘서트가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헤드뱅잉과 샤우팅으로 공연장을 달구고 관객은 환호성과 떼창으로 화답한다. 작중 넘버인 “왓 더 X”처럼 욕이 나올 정도로 황당하지만, 록 음악의 파워풀한 에너지가 짜릿하게 전해지는 시간이다.

관객을 펄쩍펄쩍 뜀박질하게 하는 뮤지컬이다. 공연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12월 1일까지.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