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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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리기사도 노조를 조직해 사용자와 단체교섭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다. 대리기사와 같이 위임이나 도급 형식으로 계약해 일하는 특수고용직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관련 업계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부산 소재 대리운전업체 에프엔모빌리티(옛 친구넷)이 대리기사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앞서 친구넷은 부산 지역의 또 다른 대리운전업체 '손오공'과 2014년 5월부터 대리운전 접수 및 기사 배정 등에 필요한 '로지'라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며, 불특정 다수의 대리운전 기사들과 '동업계약'을 맺었다.

A씨는 2017년 9월 원고 회사와 동업계약을 맺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대리운전 업무 수행했다. 그러다 그는 '부산대리운전산업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대표자로서 2018년 12월 부산시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해당 노조는 원고 회사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불응하며 A씨 등 조합원 3명을 상대로 2019년 2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의 쟁점은 '대리기사의 노조법상 근로자 여부' 등이 됐다. 법원은 대리기사에게도 노조를 결성해 단체교섭·행동에 나설 권리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져봤다.

대법원 판례는 노조법상 근로자를 판단할 때 △노무 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보수를 비롯하여 노무 제공자와 체결하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 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한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대리기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리운전 업무 내용 및 업무가 이뤄지는 시간, 대리운전 업무 수행에 필요한 시간, 우선 배정 방식에 의한 대리운전기사 배정 등을 고려하면 피고가 겸업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원고 회사에 소득을 의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 회사와 대리기사들이 체결한 동업계약서는 주로 대리운전기사들의 의무 사항을 정하면서 원고 회사에만 대리 운전비 결정 및 수수료 변경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재판부는 계약 내용도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대리기사에게도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인정하는 게 헌법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봤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그대로 확정했다. 다만 상고심 전에 '손오공' 대표가 사망해 상고심에선 친구넷 대표만 재판을 받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 대리기사는 2013년 8만7000명에서 2020년 16만40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법원이 대리기사의 노동3권을 인정해주는 판결이 나오면서 회사와 단체교섭을 시도하는 대리기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이 최근 특수고용직의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 관련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법원은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방송연기자, 자동차 대리점 판매원 등의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은 대리운전기사의 근로자성이 문제가 된 대법원 첫 판결"이라며 "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한 사건이 아니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한 사건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는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