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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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1번지'의 대명사인 대치동 일대를 일터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대치동 학생들과 부모들의 일상을 면밀히 지켜봐 온 이들이다. '대치동'을 어느 정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기다.

대치동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예로 들어보자. 학원가 공인중개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르다. 공부하는 학생과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아서다. 고객에게 최적의 매물을 선보이기 위해선 학부모 이상으로 학군·학원 정보에 두루 박식해야 한다. 대치동 공인중개사들은 "자녀 교육 목적 없이 대치동 매물을 알아보는 손님은 드물다"며 "대부분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입 모아 말했다.

이들이 바라본 대치동은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 이야기'는 마지막 시리즈로 대치동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바라본 대치동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한다.


"대치동 아이들에게 학원 강사는 선생님이 아니라 쇼핑 대상 같아요."

대치동 강사 5년차인 박병조 씨(33)는 대치동 학생들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많이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12년 학원 강사를 시작한 박씨는 경력을 쌓아 2019년 대치동에 입성했다. 그는 "강사들에게 대치동은 종착지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씨는 "학원 강사를 하는 사람들은 시기가 문제지, 언젠가는 대치동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며 산다"며 "가장 큰 이유는 벌수 있는 돈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치동에 와보니 공짜는 없었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었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학원도 많고, 그 안에 강사는 더 많았다.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밀려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대치동은 시중 문제집을 쓰는 강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강사 이름이 적힌 교재를 반드시 개발해야한다.

시즌마다 새로운 문제로 교체하는 것도 필수다. 박씨는 "대치동 학생들은 기존에 봤던 문제들이 있는 문제집은 좋아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문제, 보지 못했던 유형의 문제를 봐야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강의 방식에서도 차별성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행을 했고, 많은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업 연구를 허투루 해선 들통이 나기 일쑤다. 그는 "저 선생님에겐 배울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수업을 듣는다"며 "같은 내용이라도 특별하게 포장을 잘하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학생들이 강사를 외모로도 평가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단과 학원은 학생 숫자대로 월급을 받는데, 학생들도 그것을 안다. 월급을 계산해보고 돈을 못버는 강사는 무시한다"며 "선생님들 중에는 잘나가는 강사로 보이기 위해 명품 옷만 입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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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까지 준비를 하는 이유는 대치동 학생들은 수업이나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그만두기 때문이다. 그는 "대치동에는 학원이 너무 많고, 강사는 더 많다"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맘에 안들면 갈아타는 '강사쇼핑'이 늘 이뤄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것이 장기적으로 학생들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선생님에게 꾸준히 배워서 약점을 보충해나가야 하는데 이곳저것을 옮겨 다니다 보니 못하는 부분은 계속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게 이곳 강사들의 진단이다. 대치동에서 5년째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A씨는 "어릴때부터 선행을 많이 하니까 공부를 많이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높은 수준의 수업만 들으려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고등학교때 결국 실력이 드러난다"며 "유행하는 선생님을 찾는게 아니라 자기와 잘 맞는 선생님을 믿고 꾸준히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조언했다.

다만 대치동 학원이 경쟁력이 있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했다. 박 선생은 "미래에 자녀를 갖게 되면 대치동 교육을 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이해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쏟아붓는 교육은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며 "다만 고등학생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강사들의 수준도 높고, 경쟁력이 있는 만큼 대치동에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