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에 따라 한 몸처럼 오르내리던 D램 가격이 최근 수요처, 제품 세대, 제조사에 따라 천차만별로 움직이고 있다. 서버용 D램은 호황인데 PC와 스마트폰용 D램 가격은 떨어지고, 최신·구형 제품 간 가격 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식이다. 똑같은 D램 기업인데도 어떤 고객을 확보했느냐에 따라 실적이 엇갈리고 있다. D램의 성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차별 없이 가격이 오르내리는 ‘상품(commodity)’에서 제조사와 품질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제품(product)’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똑같은 D램이 아니다…AI용 귀한몸, PC용 푸대접

○서버용 D램 ↑, PC용 D램↓

2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더블데이트레이트5(DDR5) 64기가바이트(GB) RDIMM’ 등 서버용 D램 모듈 가격은 모델별로 전월 대비 1~2% 상승했다. 반면 PC용 D램 모듈인 ‘DDR5 16GB SO-DIMM’ 고정거래가격은 전월과 변동이 없었다. 지난달 공급 계약이 체결된 PC용 개별 칩 가격은 10~22% 하락했다.

두 품목의 가격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건 수요였다. 구글, 바이두 등 미국과 중국 테크기업이 서버 투자를 이어가면서 서버용 D램 주문은 꾸준한 반면 PC D램 수요는 주춤해서다. 블룸버그가 지난달 26일 집계한 13개 대형 테크기업의 2024회계연도 설비투자는 2314억달러로 8월 6일(2308억달러) 대비 소폭 늘었다. 2025회계연도엔 1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달리 PC 제조사들이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제품을 공격적으로 출시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이를 반영해 4분기 PC용 D램 가격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전 분기 대비 3~8%’에서 ‘보합’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형 칩은 날고 구형 칩은 기고

DDR5와 DDR4 간 가격 차이도 벌어지고 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올 3분기 PC용 DDR5 D램 모듈 가격은 DDR4 대비 29% 높게 형성됐다. 2분기 26%에서 더 벌어졌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주력인 DDR4 공급을 늘린 여파다. DDR4는 2012년 상용화된 D램 규격으로, 2020년 출시된 DDR5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2020년 월 4만 장(웨이퍼 기준) 수준이던 CXMT의 D램 생산 능력은 현재 월 16만 장(글로벌 점유율 10%)으로 늘어 세계 4위가 됐다. 올해 말 20만 장으로 증가하고, 내년에는 30만 장으로 늘어난다.

한국 메모리 기업들도 ‘리볼칩’으로 불리는 재활용칩을 시장에 판매하며 DDR4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볼칩은 폐기된 메모리 모듈을 재활용해 생산한다. 트렌드포스는 “저가 리볼 DDR4칩이 현물 시장에 널리 퍼져 있다”고 했다.

○삼성과 SK도 차별화

D램 시장 점유율과 비슷한 매출을 보인 메모리 3사 구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6조8456억원으로 한 달 전(7조960억원) 대비 3.5% 줄었다. 반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같은 기간 17.8%(13조6606억원→11조2313억원) 감소했다. SK하이닉스의 하향 조정 폭이 작은 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부가가치 서버용 D램의 매출 비중이 50%가 넘는 점이 감안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PC용 D램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고 최신 HBM의 엔비디아 납품 지연, 1조5000억원 규모의 직원 성과급 등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